"어려운 일 마다 않고 살신성인하던 아버지"
국유단 유해발굴사업, 전사자 199명 신원확인

송병선 하사 유해 발굴 작업 [사진제공=국방부]

송병선 하사 유해 발굴 작업 [사진제공=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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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6·25전쟁 당시 적과 맞서다가 전사한 고(故) 송병선 하사의 유해가 71년 만에 딸 곁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20년 7월 강원 평창군 신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송 하사로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고인은 인천 옹진군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열다섯 살 되던 해 부친을 여의었다. 송 하사는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며 농사를 지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짝을 만나 슬하에 2녀를 뒀는데, 둘째 아이가 갓 돌을 넘긴 1950년 12월8일 입대했다. 국군 7사단 3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이듬해 3월 초 평창군 일대에서 펼쳐진 '하진부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국군은 북한군의 공세로 원주 일대에 막대한 손실이 생기자, 적을 포위·섬멸하고자 격멸작전을 계획했다. 이에 따라 고인이 속한 7사단 3연대는 주공(主攻)으로 평창 잠두산과 백적산을 경유해 하진부리 방향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적의 저항이 완강했지만, 화력지원을 받은 7사단 3연대는 적을 격퇴한 뒤 작전 목표였던 평창군 속사리와 하진부리까지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인은 이 전투에서 유명을 달리하게 됐고 손톱과 발톱으로 남아 유족에게 송환됐다.


송병선 하사의 유해 [사진제공=국방부]

송병선 하사의 유해 [사진제공=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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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유해는 반세기 넘는 시간이 흐른 2020년 발굴작업 당시 왼쪽 팔뼈 일부가 최초로 식별됐고 전문인력이 투입된 추가 수색에서 갈비뼈를 비롯한 유해 7점과 전투화, 독수리 문양의 단추 등 유품 11점이 함께 발굴됐다. 유해의 잔존율이 높지 않은 탓에 신원을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기 어려웠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고인의 장녀 송효숙씨와 부녀관계로 확인되면서 송 하사는 71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장녀 송씨는 "전쟁 당시에는 아버지의 손톱과 발톱만 돌아왔으니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영영 못 찾을까 싶어 기도를 많이 했다"며 "국가와 국방부가 아버지를 찾아주니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딸은 "불이 난 이웃집에서 아이들을 구출하고 불을 끄기도 하셨다"며 "동네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몸을 돌보지 않고 살신성인하던 분이셨다"고 아버지를 회상했다.


신원확인 통보 행사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9일 인천에 위치한 유족의 자택에서 치러질 예정이며, 1954년 수여가 결정되고도 아직 전달되지 못한 화랑무공훈장이 유가족에게 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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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0년 4월 시작됐고 지금까지 전사자 199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국유단은 유해 신원 확인에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전화나 인근 보건소·보훈병원·군병원 등으로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나 거동 불편,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우면 국유단이 직접 찾아갈 수도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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