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시장격리 의무화 법안(양곡관리법 개정안) 강행…쌀 공급과잉 고착화 논란 재점화
전문가들 "시장격리 의무화 시 재배 유인 늘어 공급과잉과 시장 왜곡 유발"
2005년 공공비축제 도입 후 시장격리 투입 예산만 23조원…재정 부담 가중

[쌀 과잉 논란]넘쳐나는데 먹는 사람은 '뚝'…혈세로 막는데 시장격리 더하라는 野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우리나라 쌀 공급과잉을 둘러싼 수십 년의 해묵은 갈등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에 속도를 내면서 다시 불붙었다. '쌀'을 정쟁 도구로 삼을 게 아니라 쌀 공급과잉이 고착화한 근본적 원인을 찾고 숙원 과제를 해결하는 데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13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쌀 산업의 구조적인 공급과잉은 소비가 생산보다 빠르게 감소한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했다. 특히 2005년 공공비축 제도 도입 후 18년 동안 한 해 쌀 생산량보다 신곡 수요가 더 많았던 적은 네 차례에 불과하다.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많아 거의 매년 쌀이 남아돌았다는 얘기다. 당연히 시장에서 쌀 가격은 떨어졌고 농가의 소득 보전은 정부에게 남겨진 몫이었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시장격리와 공공비축을 뒷받침한 재정 소요만 23조원에 달한다.

일차적인 문제는 농가가 생산한 쌀은 남아도는데 쌀을 찾는 소비자의 수요가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통계청 통계를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2005년 80.7kg에서 지난해 56.9kg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줄어 이 기간에만 29.4% 감소했다. 국민은 쌀밥을 먹지 않겠다는데 농가는 쌀로 밥을 계속 짓고 싶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수십 년째 이어지는 셈이다.


사실 쌀 공급과잉의 원인은 복합적이라서 어느 한쪽만 해결한다고 해서 방정식을 풀기는 어렵다. 쌀농사는 자동화 비율이 높고 노동력이 덜 드는 영농 편의성 덕분에 다른 작물로 전환하려는 농가의 수요가 적은 공급 측면과 국민의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가 급감한 수요자 측의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쌀 과잉 논란]넘쳐나는데 먹는 사람은 '뚝'…혈세로 막는데 시장격리 더하라는 野 원본보기 아이콘


하지만 지난 세월을 거치면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 곳간은 농가의 '보험' 격이 됐다. 정부가 쌀 초과 공급량을 농가로부터 사들일 때도, 보관할 때도, 되팔 때도 예산이 들어간다. 쌀 시장격리에 투입한 혈세는 정부가 다시 수익으로 거둬들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한마디로 '죽은 예산' 사업으로 불린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쌀 시장격리 예산을 두고 "비용 투입 대비 실적이 저조해 차라리 (남는 쌀을) 바다에 갖다 버리는 게 낫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정치권에서는 야당 단독으로 시장격리 의무화와 논 타작물 재배 지원 근거를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전날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전문가들은 시장격리를 일시적인 정책 수단이 아닌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장 왜곡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격리 의무화 시 오히려 재배 유인이 늘어나 생산 조정 효과는 줄어들고 공급과잉을 유발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심화→가격 변동성 확대→시장격리 증량→재정 부담 가중이라는 늪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 중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고 시장격리 의무화가 현실화할 땐,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현재와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초과 생산량은 급증하고 1인당 쌀 소비량은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쌀을 소비하는 수요는 뚝 떨어지는데 농가가 생산한 쌀은 넘쳐나 정부가 예산으로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하는 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 경우 2030년이면 쌀 초과 생산량은 약 64만t에 이르고 시장격리 소요 비용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평균 1조4000억원을 상회할 전망이다. 시장격리를 의무화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초과 생산 규모가 약 40만t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종인 KREI 연구위원은 "급격한 쌀 가격 하락 시에는 시장격리 등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나 농가의 재배 면적 감축 노력 등이 없다면 정부의 재정 부담만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며 "쌀의 경우 2~3년 비축했다가 처리할 때도 비용이 들어 비축할수록 비용으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쌀 과잉 논란]넘쳐나는데 먹는 사람은 '뚝'…혈세로 막는데 시장격리 더하라는 野 원본보기 아이콘


농식품부는 단기적 수급 불안 시에는 시장격리를 추진하되 구조적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적정 생산을 통한 쌀 수급 균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략작물 직불제를 내년 신규로 도입하고 가루쌀과 밀·콩 등의 재배·생산을 대폭 확대하는 등 쌀 가공산업을 활성화하고 자급률을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식량주권 확보'의 일환으로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가루쌀을 활용한 쌀 가공산업은 내년도 생산단지 39개소를 최근 선정하는 등 탄력을 받고 있다. 농가의 판로 확보와 소득 안정을 위해 밀이나 동계 조사료와 이모작하는 경우 ha당 250만원, 가루쌀만 재배하는 경우 ha당 100만원을 지원한다. 2026년에는 가루쌀 생산단지를 200개소까지 늘리기로 로드맵을 짰다.

AD

한석호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쌀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책을 고민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센티브를 적절히 배분해 타작물로 전환을 유도하는 등 쌀 재배 면적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면 쌀 재배 면적은 줄지 않고 소비는 더 감소하면서 격차는 더 벌어질 테고 그 경우 시장격리에 따른 재정 소요는 현재 1조원 초반대에서 2조원, 3조원으로 금세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그동안 공익형 직불금 등으로 농가의 소득은 보장하되 특정 품목에 대한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의해 수급 균형을 모색한다는 농정 기조를 유지해왔는데, 야당이 주장하는 시장격리 의무화 법안(양곡관리법) 개정은 시장 논리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고, 정책도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