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는 강성 좌파"…6세에 대처 퇴진 시위 참여
18세인 자유민주당원으로 군주제 폐지 주장하기도
보수당 입당 부모 지지 못받아…"불륜은 나의 잘못"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  [사진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 [사진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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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진보주의자였던 부모를 따라 핵무장 반대 시위에 나서 "(마거릿) 대처 퇴진"을 외친 6살 소녀(1982년). 중도 성향 자유민주당원으로서 영국의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쫓아내야 한다고 했던 18살 여대생(1994년). 28년이 흘러 그는 영국 보수당 대표가 됐으며 지난 6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제 2의 대처가 되겠다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에 입맞춤했다.


영국 제78대 총리에 오른 리즈 트러스(Liz Truss)의 삶은 정치적으로 봤을 때 꽤 역설적이다.

그는 보수당의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2012년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모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라며 "노동당의 왼쪽에 있는 존재(being ‘to the left of Labour’)"라고 설명했다.


1982년 간호사이자 교사였던 트러스의 엄마는 핵무장 반대운동(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시위에 어린 딸을 데려갔다. 런던 그린햄커먼(Greenham Common)의 미국 공군기지(RAF)에 핵탄두 보유를 허용한 대처 총리의 결정을 규탄하는 시위였다.

트러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매기(대처 총리를 칭함), 아웃’이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대처, 아웃" 외쳤던 소녀, 보수당에 입당= 트러스는 1975년 잉글랜드 옥스퍼드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4살 때 부모는 스코틀랜드 페이즐리로 이주했다. 트러스는 2019년 어머니의 날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페이즐리에 살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CND 시위용 팻말을 든 흑백 사진을 공유했다. 트러스는 "엄마, 우리 정치적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엄마의 열정, 기운, 비판적 시각은 평생 나에게 영향을 줬다"고 썼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어린 시절 스코틀랜드 페이즐리에 살 때 진보 성향인 부모를 따라 핵무장 반대운동(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시위에 참여해 대처 퇴진을 외쳤다. 맨 오른쪽이 트러스.    이미지 출처=트러스 인스타그램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어린 시절 스코틀랜드 페이즐리에 살 때 진보 성향인 부모를 따라 핵무장 반대운동(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시위에 참여해 대처 퇴진을 외쳤다. 맨 오른쪽이 트러스. 이미지 출처=트러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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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는 어렸을 때는 보수당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당이 분별 있는 말을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에 조금씩 오른쪽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트러스는 중도 성향 자유민주당원이었다. 트러스는 옥스퍼드대 학생조직 대표이자 전국 학생조직 집행위원이었다. 1994년 자유민주당 콘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서 군주제 폐지를 주장한 영상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트러스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뒤 1996년 보수당에 입당했다. 당시 딸이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 사실에 트러스의 부모는 큰 충격을 받았다. 2001년 트러스가 첫 하원 선거에 도전했을 때 어머니는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선거 운동을 도왔지만 아버지는 끝내 선거 운동을 돕지 않았다.


2001년 출마한 지역구는 보수당 험지였기 때문에 트러스는 큰 표 차로 노동당 후보에게 패했다. 지역구를 바꿔 도전한 2005년 총선에서는 2.9%포인트 차로 아깝게 낙선했다. 2010년 세 번째 도전에서 트러스는 배지를 달았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대표가 여성·소수인종 우대로 트러스를 발탁했고 트러스는 보수당 강세 지역인 사우스웨스트 노퍽에 공천받을 수 있었다. 배지를 단 후에는 승승장구했다. 보수당 3개 내각에서 5개 장관직을 수행했다. 캐머런 내각에서 환경장관을 시작으로 메이 내각에서는 법무장관과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국제통상장관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총리 취임 전까지 지난 1년 동안에는 외무장관을 맡았다.


트러스는 대처가 자신의 롤모델이라며 대처 시대를 그리워하는 강경 보수당원의 지지를 끌어냈다. 대처는 식료품점 딸로 태어나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트러스는 자신이 대처와 비슷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자신이 어린 시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수학 교수였던 아버지가 1988~1989년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트러스는 1년간 캐나다에서 학교에 다녔다. 트러스는 2018년 인스타그램에 당시 사진을 올리며 "30년 전 캐나다에서 1년을 보냈고 당시의 경험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았다"고 썼다. 트러스는 유세 과정에서 캐나다에서 더 좋은 수업을 받았다며 영국에서 공립학교에 다닐 때 열악한 교육 수준과 기회의 부족 때문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보수당에는 전통적으로 명문 사립 학교를 다닌 의원들이 많고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였다. 2010년 총선에서 자신을 발탁한 캐머런 총리와 전임 존슨 총리는 모두 명문 사립 이튼 칼리지를 졸업했다.


리즈 대학의 빅토리아 허니먼 정치학 교수는 "트러스가 겸손한 배경을 강조함으로써 식료품 가게의 딸 대처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1988~1989년 아버지가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1년간 캐나다에서 학교에 다녔다. 트러스는 당 대표 선거 중 캐나다에서 받은 수업이 영국에서 받은 수업보다 좋았다고 말해 영국 동문의 반발을 샀다. 가운뎃줄 왼쪽 두 번째가 트러스.  [이미지 출처= 트러스 인스타그램]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1988~1989년 아버지가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1년간 캐나다에서 학교에 다녔다. 트러스는 당 대표 선거 중 캐나다에서 받은 수업이 영국에서 받은 수업보다 좋았다고 말해 영국 동문의 반발을 샀다. 가운뎃줄 왼쪽 두 번째가 트러스. [이미지 출처= 트러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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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스캔들 눈감았던 남편, 조용한 외조= 트러스는 1997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남편 휴 오리어리를 처음 만나 2000년 결혼했다. 오리어리는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회계사였다. 당시 트러스 역시 정치 활동을 하면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었다.


2006년 트러스가 과거 보수당 하원의원과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트러스는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트러스와 불륜 관계였던 마크 필드는 런던 시장 후보로도 거론된 인물이었다. 불륜 관계가 폭로된 뒤 필드는 이혼했지만 트러스는 오리어리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오리어리는 2019년 인터뷰에서 아내의 과거 불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트러스는 자신의 잘못이었다며 지금 결혼 생활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트러스와 오리어리는 프랜시스(16), 리버티(13) 두 딸을 두고 있다. 오리어리는 세 차례 구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있다.


오리어리는 두 딸과 함께 다우닝가 관저에 입주할 것으로 보인다. 사춘기 10대 자녀들이 관저에서 지내는 것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이후 처음이다. 트러스 총리는 그동안 가족들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왔다. SNS에 생일 등에 메시지를 띄울 뿐이고 특히 딸들의 사진은 몇 장 안되는 데다가 주로 뒷모습이었다.


오리어리는 선거운동 중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총리 배우자가 된 후에도 앞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러스는 "남편이 일에 관여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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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는 당시 여자친구와 관저에 입주해서 논란이 됐다. 그는 이후 200년 만에 처음으로 현직에서 결혼한 총리 기록을 세웠고 재임 중 아들과 딸을 얻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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