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상경도 낙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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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도 낙향도 없다


서울시 강남과 강원도 강릉을 매주 오가는 중이다. 평일은 서울에서 주말은 강릉에서 주로 보낸다. 1년 전 강릉으로 이주했으나 일하는 공간은 서울에 있어서 일과 삶이 분리된 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금요일에 서울역에서 KTX를 탈 때면 매주 여행을 가는 기분이 된다. 어서 아이들과 만나야지, 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조개를 잡고 야구도 봐야지, 하고 설레는 것이다. 물론 몸이야 힘들지만 적어도 마음이라도 잘 돌보려고 한다. 누군가는 휴가철에만 느낄 수 있는 그 설렘과 매주 마주할 수 있으니까 좋은 일이라고 애써 여긴다.

내가 강릉으로 간다고 할 때, 서울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것이다.


“잘 내려가.”

내가 다시 서울로 간다고 할 때, 서울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것이다.


“잘 올라와.”


사실 별다른 위화감도 없이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다. 우리는 서울을 기준으로 두고 그 바깥의 모든 지역에 대해 ‘내려간다’는 표현을 쓴다. 실제로 서울이 북쪽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언젠가 경상도 지역의 청년에게 이런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서울과 지방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2등 국민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요.”


그러고 보니 나도 다르지 않아 그에게 미안해지고 말았다. 강릉이 아니더라도 지방에 일정이 있어서 가야 할 때마다 그랬다. 곧 만날 도서관이나 학교의 담당자에게 “곧 내려갈게요, 뵈어요.”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담당자가 먼저 “어서 내려오세요.”라고 한다든가 아니면 서울로 다시 가야 하는 나에게 “조심히 올라가세요.”라고 한다든가, 했던 듯하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전근대적 상경과 낙향의 서사가 있다. 상경,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낙향, 서울에서 지방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사람도 돈도 문화도 모두 서울에 집약되고는 있으나 적어도 우리 언어의 세계관부터 바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누가 어디에 간다고 하거든 그저 “잘 다녀와.”라고 하는, 누가 어디로 돌아간다고 하거든 그저 “잘 돌아가.”라고 하고 애써 말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나의 아이들이 언제까지 강릉에서 지내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건 내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강릉으로 이주한 것도 바다가 좋다고 하는 그들의 해맑음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이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나 가치로 두지 않으면 한다. 서울에서든 강릉에서든 어디에서든 자기 자신으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동을 두고 올라간다거나 내려간다거나 하고 말하지 않는, 공간과 사람의 위계를 두지 않는 한 사람으로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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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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