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남북 강도와 인질이 묻는다 '통일이 되면 어떨 것 같소?'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류용재 작가
"'통일이 된다면…' 가정, 대조되는 배역들로 혼란 속 욕망·변화 그려"
"갈수록 새로운 스토리…창의성 비판은 부당"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류용재 작가가 생각하는 리메이크 전제조건은 두 가지. 원작에 대한 애정과 다시 만드는 분명한 이유다. 후자는 원작이 덜 알려졌다면 그것만으로도 명분이 된다. ‘종이의 집’은 해당 사항이 없다. 시즌 5는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시청됐다.
지난 1일 아시아경제를 만난 류 작가는 "분단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흥미로운 배역들을 배치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원작에 교수(알바로 모르테)가 조폐국을 점거해 24억 유로를 찍어내는 의도를 밝히는 장면이 있다. 배경이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면 더 많은 의도가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란한 정국에는 이익을 좇는 이해관계 집단들이 등장하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생각해낸 집단이 북한에 대대적 투자를 약속하는 오성 그룹이다. 1화 도입부에서 각종 매체의 보도와 함께 간략히 소개된다. "남에도 북에도 이 변화의 바람을 타고 떼돈을 벌었다는 작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뒤로 6화까지 관련한 내용이나 단서는 딱 한 번 나온다. 나머지 분량은 원작의 인질극과 협상을 거의 그대로 옮겨 담았다. 이야기를 비틀거나 변주하지 않아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류 작가는 "원작 팬으로서 케이퍼 무비의 매력을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서도 "배경만 달리했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1~6화를 파트 1, 7~12화를 파트 2로 나눠 공개해서 오해가 생긴 듯하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강도들의 계획이 위기에 빠질수록 새로운 이야기의 색깔이 짙어지는 구조다.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6화까지만 시청하고 원작과 똑같다고 비판하는 건 부당하다."
실제로 기획 단계에서 시발점은 ‘자본을 중심으로 통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이었다. 통일 화폐 발행에 따른 사회경제적 파장이 어느 화에서든 집중적으로 담길 수밖에 없다. 중심에는 주인공인 교수(유지태)가 있다. 과거 남북의 경제협력 모델을 만든 장본인이다. 핵심 가치로 남북 모두가 부유해질 수 있다는 욕망을 내세웠다. 그러나 구체화에 앞장선 순간 스스로 오펜하이머가 돼버렸다고 고백한다.
류 작가는 "1990년 독일의 통일 전후 상황을 많이 참고해 반영했다"고 밝혔다. "당시 서독과 동독 주민들의 빈부 격차, 역사관 변화 등에 주목했다. 달라지는 흐름 뒤에 늘 욕망이 자리해 있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 같더라. 흔히 통일이 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얼마나 충족할 수 있는지 예단하고 싶었다."
의도는 대조되는 배역들의 사고와 행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북한 출신의 도쿄(전종서)와 윤미선(이주빈)이 대표적인 예다. 전자는 남한 정착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진취적 자세로 달려든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살인을 저지르게 이른다. 후자는 한반도 통일조폐국에 경리로 입사하지만 자유 의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조영민(박명훈) 국장 같은 권력자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한다고 생각해 불륜을 저지른다. 류 작가는 "윤미선이 변해가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개방화에 관계없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모든 배역에게서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되는 건 아니다. 류 작가는 각 화 프롤로그에 주요 배역의 전사를 배치했다. 리우(이현우)는 의대를 자퇴하고 방탕한 생활의 소용돌이에 말려든 해커, 덴버(김지훈)는 어머니를 원망하며 범죄에 빠진 탕아로 나타난다. 남북 문제나 한국 사회의 부조리·병폐 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남다른 사연이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인질극과 협상에 무게를 둔 전개에 파묻혀 희미하게 꺼져 버린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류 작가는 "긴장이 고조되는 파트 2에서 강도들이 다양한 선택을 한다. 이때 프롤로그 속 감정이 큰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유기적으로 결합됐는지 여부는 12화까지 모두 감상하고 판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