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라임라이트]선악의 경계에서 교묘한 줄타기…범죄의 책임, 개인에게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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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그 안에 결여를 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무관심 속에 흩어져 살아간다."


영화 ‘공기인형(2009)’에 인용된 요시노 히로시의 시 ‘생명은’의 한 구절이다.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가 인간의 감정을 습득하고 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결여를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타자를 향한 열린 가능성으로 묘사한다.

한국에서 촬영한 ‘브로커’에서도 다르지 않다. 열린 가능성이 크게 세 공간에서 시각화된다. 첫 번째는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베이비박스다. 소영(이지은)은 아들 우성을 땅바닥에 내버려 두고 떠난다. 잠복근무하던 형사 수진(배두나)은 조심스레 주워 베이비박스 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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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세탁소 배달차다. 우성을 팔아넘기려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계획을 알아챈 소영과 함께 새 부모를 찾아 나선다. 하나같이 범죄자들. 하지만 입양을 소원하는 해진(임승수)이 탑승하면서 죄의식을 자각한다. 서로 결여를 채울 용기도 얻는다.

세 번째는 사회다. 등장인물들이 우성에게 애정을 보인 윤씨 부부(박해준·김예은)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한다. 단 상현은 배제돼 있다. 실낱같던 희망이 사라져 스스로 퇴단했다. 결정적 계기는 오랜만에 재회한 친딸과의 대화. 재결합을 거론하자 "‘돈은 필요 없으니까 다시는 나타나지 마세요’라고 엄마가 말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관람차 추억을 꺼내도 냉담하다. "기억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똑같이 아기를 팔아넘긴 동수와 살인까지 저지른 소영은 왜 양지 녘에 모일 수 있을까. 상현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아기를 팔았다. 동수는 해진처럼 보육원 출신이다. 우성을 과거의 자신이라 여기며 좋은 부모를 찾아주려고 한다. 소영은 성매매로 생계를 연명하다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 출산 뒤 발자취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속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흡사하다. 아이를 팔아넘기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며 모성을 체득한다. 자기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자각하며 책임감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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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저지른 죄는 도덕적으로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열린 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는 "일본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범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는다"면서 "내 영화에는 어떤 다른 요인이 있을지 찾아가는 과정이 담긴다"고 말했다.


"(범죄는) 항상 사회적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근저에도 깔려 있다. 범죄를 용인할 수는 없겠으나 범죄자를 폄하거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선악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교묘한 줄타기는 수진에게서도 엿보인다. 정의로운 형사를 자임하나 소영의 약점을 집요하게 이용한다. 연기자를 고용해 함정 수사도 한다. 그는 자신의 방식이 브로커나 다름없음을 깨닫고는 소영에게 자수를 권한다. 시민의 안전을 사수하는 본연의 자세를 회복한다. 그 덕에 세 번째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자격을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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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감독은 저서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서 공무원들에게 비슷한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그 창피를 모르는 정치인의 입에서 자랑스레 나왔을 때, 그는 명백하게 자신은 선한 쪽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은 스스로가 ‘악’을 낳는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고는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상상력이 있었다면, 정부의 청소년 육성 책임자인 듯한 그는 법적 책임은 없을지라도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아마 사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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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가족주의는 가족을 욕망의 최전선에 내세우고 자신의 모습은 숨기는 국가 권력의 문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길수록 강해진다. 그 해체는 국가주의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통찰에서 시작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함부로 희망을 가리키지 않는다. ‘대안 가족’으로까지 해석되는 등장인물들의 사진은 여전히 세탁소 배달차 백미러에 매달려 흔들린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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