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반도체·SW 인력 양성, 이번에는 제대로 하자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윤석열 정부가 10만 반도체, 100만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나섰다. 관련 기업들의 기대도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산업’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기업들이 알아서 해라"라는 분위기가 이번에는 달라질까 하는 기대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반도체 고급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며 내내 강조했지만 우리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아닌 기업 스스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정부의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은 2015년 561억원, 2016년 356억원, 2017년에는 아예 0원으로 줄었다. 연구개발 비용이 사라지자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들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약으로 소프트웨어 강국 실현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선 소프트웨어 기업 관련 지원 정책은 없었다.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 이후 자립을 주문하며 핵심 육성 산업으로 선정했지만 정작 완성품인 반도체는 대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임기 말인 지난해 5월 ‘K 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10년간 반도체 인력 3만6000명을 양성하겠다고 나섰지만 주요 기업들이 요구한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 균형 발전의 명제에 어긋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반도체를 집중 육성하겠다며 만든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반도체 특별법) 역시 연구개발 인력 주 52시간 적용 면제, 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 공장부지 규제 완화, 시설투자비 최대 50% 세액 공제 등 반도체 업계의 요구사항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부족한 인력을 적극 양성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분명 반갑지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양적 부족도 해결해야 하지만 질적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필요하다. 넷플릭스 창업주 리드 헤이스팅스는 저서 ‘규칙없음’에서 빌 게이츠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헤이스팅스는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초일류와 평범한 프로그래머의 차이가 10배 이상 나는데 초일류 1명을 채용할지 평범한 사람 10명을 고용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빌 게이츠는 "10배가 아니라 100배는 될 겁니다"라고 답한다. 이 일화를 소개한 리드 헤이스팅스는 ‘록스타의 원칙’이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흔히 ‘S급 인재’라고 칭하는 천재는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앤더스 에릭슨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천재들을 연구한 논문을 집대성한 책 ‘케임브리지 편람’에서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1%의 영감(재능), 70%의 노력, 29%의 환경으로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케임브리지 편람에 따르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의 지능지수(IQ)는 115~130 수준으로 전체 인구의 약 14%에 달한다. 평균보다는 높지만 타고났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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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스스로의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 동기부여는 결국 주변 환경에 기인한다. 주변 환경은 인재 양성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적 배려가 만든다. 저자 에릭슨 교수는 가장 중요한 얘기를 책 뒤에 덧붙였다. 그는 "대부분의 천재는 훌륭한 스승의 창조적 사고방식을 이어받는다"고 강조했다. 10만, 100만 인력 양성도 중요하지만 S급 인재를 배출해 낼 수 있는 스승을 육성해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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