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우리의 삶이란 어쩌면 태도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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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강원도 모 지역의 고등학교에 강연하러 갔다가 국어교사 L과 만났다. 그는 나와 한 살 차이가 나는 남자였다. 나의 강연을 끝까지 들은 그는 나에게 자신의 차로 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무척 선한 얼굴이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는 차 안에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나의 글이 좋다고, 언젠가 밥을 함께 먹고 싶다고, 내가 KT위즈의 팬인 것을 SNS에서 보았는데 자신은 롯데자이언츠의 팬이고 야구를 좋아하고 그래서 캐치볼도 한 번 꼭 하고 싶다고.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그렇게 그는 나에게 한 발 다가왔다.


L과는 정말로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내가 근처를 지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집에 나를 초대해 준 것이었다. 그날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보여 주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내가 아는 국어교사들이 대개 그렇지만 그들은 고급 독자이면서 글도 잘 쓴다. 그도 그랬다. 그는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쓰는 일을 했어도 잘했을 듯하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지낸 12년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보고 싶고 나와 함께 그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는 아아, 좋죠, 글을 보여 주세요, 하고 조금은 열없이 답했으나, 그의 어떤 에피소드를 듣고는 “같이 만들어 봐요.” 하고 말했다.

“아이들이 교복이 아니라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많이 와요.” “아, 맞아요. 그런 애들 있어요. 그게 편해서 그런 가 봐요.” “아녜요. 집에서 교복을 잘 다려입고 나올 수 있는 아이들은 교복을 입죠. 그런데 잘 보살핌 받지 못해서 구겨진 교복을 입고 나와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모습을 친구들이나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교사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런 마음들을 읽어내는 게 학생부장인 저의 일인 거고요.”


L과는 그 이후 몇 번을 더 만났고 며칠 전 연락이 왔다. 원고를 거의 다 썼으니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형, 우리 봐야죠.”라고 하면, 그 말에 이끌리게 된다. 그는 나에게 원고 뭉치를 전해 주면서 학생들 글 채점한다고 매번 보기만 했는데 이게 이런 기분이군요, 하고 목이 탄다는 듯 소주를 들이켰다. 나는 몇 편을 읽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그만 울고 말았다. 나는 몇 권의 책을 기획하거나 만들었고 그러면서 우연한 원칙 같은 게 생겼다. 읽다가 운 원고는 반드시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잔을 내밀면서 왜 나와 함께 책을 내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잔을 부딪히면서 나에게 답했다. “형, 지금 건배를 하면서도 형의 손이 내 앞까지 와 있잖아요. 내 손이 이 불판을 지나가지 않게요. 형은 항상 그랬어요.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누군가와 같이 술을 먹는 동안 그의 손이 뜨거운 불판을 지나 내 앞에 오게 한 일이 없었다. 그걸 알아봐 주고 그래서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L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태도에 반해 함께 일하기로 했다. 그래,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태도가 전부인지도 모른다. 그게 사람을 움직이고 그러한 글이 사람의 마음을 또한 움직이게 만든다. 그와 만들게 될 책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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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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