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 두 번째 냉전, 평화의 이득을 더욱 늘려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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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재난이 전쟁이 아닐까 하는 말을 들었다. 우크라이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지난 석 달 동안 이 전쟁의 비참을 지켜보았기에 저절로 공감이 갔다.


전쟁은 일상을 파괴한다. 고통과 두려움, 공포와 비애, 고뇌와 무기력, 절망과 좌절이 찾아온다. 도시는 잿더미가 되고, 잔혹한 학살이 벌어지며, 약탈과 폭행이 자행된다. 식량과 식수가 끊어지고, 도로와 전기가 사라지고, 직장과 학교가 없어진다. 희망이 파괴된 땅에서 인간은 생존에 몸부림치는 짐승으로 전락한다. 단테는 지옥의 입구에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라고 썼는데,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는 살아서 그러한 지옥을 만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두 번째 냉전’이 시작됐다. 첫 번째 냉전에선 우리가 우크라이나였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분단의 고통을 아직도 치르고 있다. 우리는 그 와중에도 경제 기적을 일으키고 민주화를 이룩했고 국가 번영을 달성했다. 두 번째 냉전에선 이 땅이 바라지 않는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전쟁과 평화의 조건을 숙고할 때가 되었다.


아자 가트의 ‘전쟁과 평화’에 따르면, 사회적 상호작용의 세 가지 근본 형태는 협력, 평화적 경쟁, 폭력적 분쟁이다. 인간은 이 세 가지 전략을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자원 경쟁, 번식 투쟁, 지위 다툼 등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

전쟁과 평화는 둘 다 인간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서로에게 우리는 다정하고 친밀한 존재일 수도 있고, 무자비한 폭력을 주고받는 존재일 수도 있다. 특정 환경과 성공 전망에 따라 우리는 협력, 경쟁, 분쟁 등을 자유롭게 조합해 욕망을 달성하려 한다.


각자 따로 노력해 얻는 성과보다 공동 노력으로 자원을 획득하고 분배하는 성과가 더 클 때 인간은 협력한다. 평화적 경쟁에 돌입하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상대에 대한 직접 행동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불사하고, 폭력적 분쟁 상황에서는 상대의 능력을 약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물리적 행동에 나서는 등 상대를 직접 공격한다. 인류는 모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진 않으나, 자원 획득을 위해서든 다툼 억지를 위해서든 늘 폭력을 사용 가능한 잠재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인류사적으로 볼 때, 문명화 과정을 겪으면서 전쟁은 줄고 협력과 경쟁은 늘어 왔다. 진화론적 자연 상태에선 전쟁이 흔했다. 성인 남성의 25%가 폭력으로 사망할 정도였다. 5000년 전 국가의 성립 이후 폭력은 조금씩 억제되기 시작했다. 살인이나 복수 같은 소규모 치명적 폭력과 전쟁이라는 대규모 조직된 폭력 간에 차이를 두고, 내부 평화 유지를 이유로 전자를 억제하면서 인구 대비 전쟁 사망률이 이전보다 많이 감소했다.


전쟁은 여전히 선호됐고, 이득을 노리고 모험에 나서는 세력은 늘 있었다. 그러나 높은 성벽 등으로 인해 쉽고 빠르고 결정적인 승리가 힘들어지면서 전비는 늘고 보상은 적어져 전쟁 동기가 약해졌다. 막대한 인명 손실, 투입 자원 소실 등을 감수하고 얻은 열매가 쭉정이일 확률이 높아져서 전쟁은 자주 협상으로 대체됐다. 패배는 비참했으나 승리도 상처뿐이기 쉬웠으므로 절박한 위기 상황이나 압도적 승리가 확실하지 않으면, 전쟁은 억제됐다. 무역과 전쟁이 공존하고, 협력과 투쟁이 반복됐다.


근대 이후엔 전반적으로 전쟁 자체가 급감했다. 산업혁명 이후 부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인해 평화의 매력이 높아지고, 전쟁은 위험 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과 상업적 자유무역이 무력 정복보다 수익 높은 행위가 되면서 전쟁보다 평화를 선호하는 ‘근대화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결정적?파괴적 결과를 가져오는 강대국 간 전쟁은 1815년 워털루 전투를 끝으로 빠르게 감소했다. 1815년부터 1854년까지 39년간, 1871년부터 1914년까지 43년간, 1945년부터 현재까지 77년간 강국들은 서로 전면전을 치르지 않았다. 전쟁은 사양 사업이 되었고, 평화의 내구성은 높아졌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한국전쟁도 있었으나, 점차 선진 강국들은 영토를 ‘평화 지대’로 바꿔 왔다. 전쟁은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 또는 후진국 간에 벌어졌다. 그런데 현대 무기 체제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은 선순환 관계가 있어 후진국이 선진국에 도전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므로, 선진국의 전쟁 억지력이 강해졌다. 일단 세계 경제에 연결되면 후진국도 근대화에 투자하는 게 군비 확충보다 이득이 더 컸다. 1990년대 이후,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전쟁이 줄어든 이유다.


경제성장에 따른 풍요는 평화를 촉진하고, 도시화, 고령화, 여성의 참여 증대는 위험을 피하게 하며, 성적 자유화와 문화의 세계화는 호전성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 가능성이 0에 가까워졌다. 지난 30년간 지속된 세계화 시대는 근대화 평화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주요 행위자가 패권 경쟁에 돌입하면 근대화 평화도 깨진다. 자유무역을 가로막는 장벽이 세워지면 에너지?식량을 위한 영토 확보가 경제 성공의 관건이기에 전쟁 위험이 커진다. 후진국이 자유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다음 선두국가를 위협할 때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20세기 초 독일이 영국에 도전했을 때 식민지 쟁탈전과 함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오늘날 중국이 굴기해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2008년 이후 미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서자 두 번째 냉전이 시작됐다.


아자 가트는 새로운 냉전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간의 경쟁이라고 말한다. 양자 모두 시장에 의존하는 한 ‘근대화 평화’는 당분간 우세할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경합, 통화 전쟁, 군비 경쟁, 냉전, 제한전 등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더 끔찍하게는 1914년처럼 남중국해 등의 작은 전쟁이 도화선이 되어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체제 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다.


전 세계적 안보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평화를 유지하고 번영을 지켜나갈 저력이 우리한테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평화의 이득이 전쟁의 이득보다 클 때 분쟁은 억제됐다. 힘과 지혜를 모아 이 땅에서 평화의 매력을 더욱 높여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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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문학평론가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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