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국가대표 가수 그녀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 '안개' 삽입돼 재조명

'해외가요제 석권' 가수 정훈희가 한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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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국 대중음악 전성시대다.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는다. 한류와 K-팝이 전부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현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쏟아온 노력과 인내의 소산이다. 오랜 풍파의 퇴적으로 삼각주가 형성되듯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가 오늘날 대중음악을 잉태했다.


찬란한 역사의 중심에는 뛰어난 창의성으로 독자적 표현세계를 일군 선구자들이 있다. 가수 정훈희도 그중 한 명이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비음이 섞인 미성으로 가요계를 수놓았다. 국내 대중음악이 안방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국제가요제도 진출했다. 그래서 한동안 ‘국가대표 가수’로 불렸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임진모 씨는 저서 ‘가수를 말하다’에서 그를 "해외 가요제를 석권한 한류의 시작"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그리스, 칠레 등 숱한 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며 국위를 선양했다. 이미 지나간 추억을 장악한 옛날 가수지만 젊은 가요 팬들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공전의 히트곡들은 지금도 회자된다. 데뷔곡 ‘안개’가 대표적인 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에 삽입돼 재조명된다. 정훈희는 1970년 마흔두 나라가 참가한 도쿄 야마하 국제가요제에서 열창했다. 세계적인 가수들을 따돌리고 ‘월드 베스트 10’에 입상했다. 그는 "국내 가수 최초로 국제가요제에 참여해 수상까지 이뤘다"며 "스웨덴 그룹 아바가 빈손으로 돌아가 권위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 '안개' 스틸 컷

영화 '안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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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는 이듬해 그리스 국제가요제에서 ‘너’로 아시아 가수로는 유일하게 입상했다. 1972년에는 다시 야마하 가요제에서 ‘좋아서 만났지요’로 가수상을 받았다. 1975년과 1978년 칠레가요제에서는 각각 ‘무인도’와 ‘꽃밭에서’를 불러 최고가수상을 품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 대통령에게 화환도 받았다. 장 출혈과 신경쇠약으로 입원해서다. 그는 "김추자 대신 ‘무인도’를 부르게 돼 긴장을 많이 했는데 끝내주는 결과를 얻었다"며 "너무 기뻐서 테킬라를 한 번에 들이켰다가 졸도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공연 뒤 ‘꼬레아’라고 외쳐줘서 많이 흥분했었다(웃음)."


정훈희는 국제가요제 최다 입상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행운으로 여긴다. 그는 "윤여정 언니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어떻게 글렌 클로즈처럼 멋진 대배우와 경쟁을 할 수 있을까요?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나라를 대표해 참가한 가수들이었다. 경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후배들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다. 정훈희는 2년 연속 그래미 어워드 수상에 실패한 방탄소년단(BTS) 등을 가리키며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BTS,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후배들의 해외 활동을 감상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친다"며 "충분히 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후배들의 선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잘 모른다는 할아버지들을 만날 때마다 이름을 검색하라고 다그치곤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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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를 꽃피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훈희는 데뷔 때부터 실감했다. 트로트가 유행하던 시절 TV에 출연해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다이애나 로스, 로드 스튜어트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음반에 담은 곡들도 국내에 낯선 팝 발라드였다. 지금도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해 노래한다. 판소리 명창처럼 득음해 여전히 풍부한 성량을 자랑한다. 나이를 먹으며 설 자리가 좁아지자 아예 무대(카페)를 마련해 매일같이 노래한다. 음악을 통한 교류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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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꽃밭에서’를 부르는데 몇몇 분들 눈에 눈물이 글썽 괴어 있더라. 이유는 알 길이 없다. 각자 생각하는 꽃밭이 다르니까. 아름다운 노래로 그 문을 계속 열어주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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