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급 도입, 생산성에 맞춘 임금체계로 개편해야”[임금4.0시대]
[임금4.0시대]④ 이상희 한국공학대학교 교수
"대안적 임금체계 많지만…구조적 문제 걸림돌"
"정부, 임금체계 개편 환경 조성 적극적으로 나서야"
[아시아경제 강나훔 기자, 이승진 기자] 주요 유럽 국가에선 '어느 기업'이 아닌 '하는 일'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직무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다 보니 기업간 임금 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 반면 국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장기 근속자와 경력입사자간의 임금 격차가 클 수 밖에 없다. 똑같은 일을 한다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연공성에 따라 임금 수준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내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커지며 이 같은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연공성을 띄고 있는 현 임금체계를 지속 유지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할 거란 지적이 나온다. 일하지 않아도 근속 기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임금을 받아가는 데 따른 세대 간 갈등은 물론 청년층의 고용창출 감소와 고령층의 조기퇴직 압박 등 사회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에 기반한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수십년 간 현 임금체계가 이어져오며 여러 개편 시도가 무산돼 왔던 만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적극적인 정부의 움직임을 주문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에 노동정책 조언한 정승국 교수 "공공부문 먼저 연공성 완화하자"
2021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뒤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를 만났다. 대선 출마 결심 후 처음으로 만난 전문가였다. 윤 대통령의 당시 주문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이었고 정 교수는 4시간 동안 환담 후 그동안 연구해왔던 자료를 건넸다. 정 교수는 이자리에서 사측에 해고의 자유를 줘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해고된 노동자에겐 정부 지원, 재취업 기회를 제공해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유연안전성 모델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개선 등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우리 노동시장이 변하려면 연공성 위주의 호봉제 임금 체계가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할 가장 유력한 수단이 직무급 도입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청년 초임을 높이고 비정규직, 여성 임금을 높이는 중장기적 임금체계 개편만이 향후 노동시장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연공성이 높은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다"라며 "정년 연장 논의 등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연공성을 낮추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유럽의 직무급, 일본의 역할급 등 다양한 대안 임금체계가 있지만 이를 정부가 주도해서 개편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공공부문에서는 의지만 있다면 연공성 완화가 당장에라도 가능하다"라며 "또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는 기업에 임금체계 개편을 조항으로 넣는다면 조금씩 변화가 가능한 만큼 정부에서도 연공성 완화를 위한 공감대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 커질수록 높아지는 호봉제 비중
이상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해외와 달리 연공임금이 지속 강화 유지돼 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연공임금의 기반인 호봉제는 근속 기간에 비례해 연공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해낼 수 있는 부담능력이 있어야 해 기업 규모가 클수록 호봉제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연공임금이 주로 지불능력이 확실히 담보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라며 "노동조합 역시 유익한 투쟁의 성과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연공임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의 연도별 사업체 규모별 호봉제 도입 운영 현황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전체 기업의 호봉제 도입 비중이 소폭 감소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0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2019년에서 2020년 호봉제 도입 비율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상당수가 연봉제를 도입을 확대하고 있는 와중에도 호봉제 도입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써 그만큼 우리 임금체계에 호봉제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모습을 반영한다. 특히 산업을 이끌어 가는 대형 사업체에서 연공성이 높아지는 모습은 임금체계 개편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임금체계 개편 위해서 구조적 문제 감안해야"
우리나라의 높은 연공성은 지난 수년간 여러 전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받아왔다. 그럼에도 임금체계의 개편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일본과 유사한 기업중심의 연공임금체계이지만 일본과 같은 임금커브형 인사관리나 기업 간 조정 관행도 없고, 유럽과 같은 산별교섭을 통한 협약임금제도 아니며 미국 영국과 같이 시장임금이 잘 반영되는 구조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연공임금이 뿌리 깊은 일본에서도 ‘역할급 임금체계’라는 대안적인 임금체계가 등장해 연공성을 많이 줄여 생산성을 반영하려고 한다"라며 "문제는 국내는 대안적 임금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호봉임금제를 직무급임금제로 개편하는 것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법리나 단체협약 개정 사항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결국 노사 당사자의 자발적인 임금체계 개편에만 맡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현재 대안적 임금체계는 해외사례나 대부분의 선행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어, 향후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성에 부합하는 임금체계로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노사 간 자발적 의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라며 "정부도 성과가 가시적이지 않더라도 임금체계 개편 필요 환경 조성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커지는 정년연장 가능성…임금개편 서둘러야
현 정부에서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이 교수는 현재의 높은 연공성은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이 교수는 "65세 정년연장 추진 가능성이 점증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정년연장 시 넘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연공임금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65세 정년연장은 현재에도 어려운 청년고용에 매우 부정적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므로 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안은 임금체계를 생산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생산성에 기반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서 약 10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연공성을 매년 약화시켜 나가는 연착륙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사업장별 임금체계 특징에 비추면 연공성이 강한 호봉임금제를 보유한 대기업 공공부문 사업장과 연공성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 사업장으로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65세 정년연장의 경우에는 대기업 공공부문부터 먼저 시행할 것이 아니라 65세 정년연장의 부정적 영향이 적은 중소기업 부문부터 먼저 시행하는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최후적으로 대기업 공공부문에서 정년연장을 하더라도 60세 정년연장에서 경험에 비추어 65세 정년연장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임금피크제 시행을 전제로 적용토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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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오성수 gujasik@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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