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 최초 '성중립 화장실'…다양한 사용자 위한 '배려'
점자블록, 핸드레일,각도거울, 월경컵 세척할 수 있는 세면대까지
학내 반발도 있었지만…'기본권' 존중에 초점

21일 오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표지판./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21일 오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표지판./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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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화장실 이용은 기본권 아닌가요? 당연한 거라고 봐요."


우여곡절 끝에 국내 대학 최초로 성공회대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지난 16일 설치됐다. 이 화장실은 성별·장애·나이·성적지향·성정체성 등과 상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21일 오전 방문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세심한 배려였다. 입구 우측에 붙은 여자, 남자, 성중립을 상징하는 이미지, 기저귀를 가는 사람, 장애인 로고까지 다양성을 강조한 표지판부터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인상을 줬다.


21일 오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내부. 2~3인 이상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널찍하다/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21일 오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내부. 2~3인 이상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널찍하다/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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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 보통 화장실과는 달리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입장부터 쉬웠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어린이 등의 눈높이에 맞춘 듯한 화장실 출입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렸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내부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외부에서 '사용중' 표시가 켜지고, 외부에서 '열림' 버튼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내부는 3인 이상이 들어와도 충분하다 느낄 정도로 널찍했다. 화장실 이용 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려한 크기다.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저귀 교환대, 시각 장애인용 점자블록, 곳곳에 설치된 핸드레일, 누구에게나 맞춤형이 될 수 있도록 제작된 각도 거울까지 섬세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21일 오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내부. 월경컵 사용자도 이용할 수 있는 세면기가 설치돼있다./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21일 오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내부. 월경컵 사용자도 이용할 수 있는 세면기가 설치돼있다./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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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돋보였던 건 월경컵 이용자의 동선을 고려한 작은 세면대다. 최근 월경컵 이용자가 확대되며 북유럽처럼 변기가 위치한 칸 안에 월경컵을 세척할 수 있는 작은 세면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지만 관련 논의는 몇년째 진척이 없던 상황이었다.


성공회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인권국장으로 2020년 말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 건립을 추진해온 성계진씨는 '모두의 화장실'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해 세심하게 만든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성씨는 "월경컵 이용자가 많아졌는데 화장실 칸 안에 월경컵을 헹구거나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만든 시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화장실이라고 오해하는 시선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다양한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진통을 겪었다. 2017년 총학생회가 관련 논의를 시작했지만 학내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성씨는 "'왜 내 돈으로 그런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나'하는 비용 문제가 있었고 또 주변에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경험하지 못한 학우들이 화장실 건립을 반대해왔다"며 "화장실 내 성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 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맥락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준공이 끝난 이후에도 성공회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 디시인사이드 '성공회대 갤러리' 등에서는 성중립 화장실 찬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남녀 혼용 사용 불편할 것이란 지적부터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비난 일색인 글까지 올라왔다.


이에 대해 성씨는 "에타에서 필터링 없이 나오는 말들과 공론장에서 나오는 문제 제기는 차이가 있다"며 "에타에서 나오는 말들은 논리가 갖춰지지 않고 '게이가 싫다', '모두의 화장실 만든 사람은 짱깨(중국인 비하표현)' 이런 식으로 성소수자 및 인종차별적 맥락에서 발화된다. 여론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성공회대 입구./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21일 오전 성공회대 입구./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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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서 만난 학생들의 말도 비슷했다. 성공회대 교정에서 만난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신효씨는 "모두의 화장실 건립은 그간의 차별에 맞선 고무적인 일"이라며 "사실 자유롭게 화장실 가는 건 기본권이다.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상대의 기본권을 존중하지 않는 차별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도 "각 관마다 설치한 것도 아니고 한 건물 지하 한 켠 설치한 건데 논란이 너무 크다"며 "국내 대학 최초라는 의미도 있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어서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을 이어온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장애인,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단위, 성소수자 등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의 모습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성인 위주, 성별이분법적 시각,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불평등한 화장실이 사람들의 활동을 제약해왔다. 불평등한 화장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사회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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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성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 대신 모두를 위한 화장실(Restroom for all)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럽에서는 두 용어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별이분법적 시각이 더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성중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트랜스젠더 등을 떠올리게 되면서 거부감이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모두'를 강조하게 된 측면이 있다"며 "결국 목표는 누구나 차별없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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