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유럽 가는 바이든…길어진 전쟁·인플레에 발목 잡힐라
러 원유 수입금지로 휘발유값 상승
미국인 77% "에너지 제재 찬성"
바이든 지지율도 전쟁 이후 껑충
24일부터 벨기에서 NATO·EU
G7 정상들과 우크라 전쟁 논의
러 추가 제재 이끌어내야 하는데
獨 등 원유수입 금지에 미온적
[아시아경제 조현의 기자] 냉전 초기인 1947년 3월12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무장한 소수 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하는 자유국가 국민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원조를 하지 못하게 된 영국이 미국에 소련의 위혐이 임박한 이들 국가를 대신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응답이다. ‘트루먼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연설에서 ‘무장한 소수’는 그리스와 터키의 공산주의자들, ‘외부’는 소련을 뜻한다. 트루먼 대통령이 내놓은 이 대외정책은 경제 고립 등 대(對)소련 봉쇄를 통해 결과적으로 소련의 해체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또다시 이 같은 정책을 구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일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이 그랬듯이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경제·인도적 지원에 지속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소련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던 트루먼 독트린과 달리 러시아 정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를 경칭 없이 ‘푸틴’이라고 부르고 그를 겨냥해 "독재자들이 침략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때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는 교훈을 역사적으로 얻은 바 있다"고 강조했다.
75년 만에 다시 등장한 봉쇄정책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한편 광범위한 대러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냉전 당시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막아 소련이 내부 문제 때문에 스스로 붕괴하도록 한 봉쇄정책을 또다시 적용한 것이다. 리처드 폰테인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 소장은 이코노미스트에 "미국이 고전적 봉쇄정책으로 돌아갔다"며 "러시아의 확장을 막고 약화하도록 해 종국에는 정치 지도부 교체를 바라는 정책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니 전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도 더힐 기고에서 "푸틴이 냉전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줘야 한다"며 "그가 소련이 존재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면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국제사회 고립 속 경제위기 등으로 물러서길 바라고 있다. 미 싱크탱크 유럽정책연구소의 알리나 폴랴코바는 "미국과 러시아의 싸움은 이제 장거리 운행이자 모종의 ‘황혼의 투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에 따라 적용한 대러 제재 중 일부는 미국 경제에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 대다수는 이를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처벌하는 방안이라고 여기고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발표한 이후 휘발유값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지만 미국 국민 10명 중 8명 가까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CBS가 지난 8~11일(현지시간) 성인 20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이 같은 조치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23%에 불과했다. 휘발유값이 급등하더라도 이 같은 제재를 여전히 지지한다는 응답도 63%에 달했다. 눈에 띄는 점은 러시아 원유·천연가스 제재가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 84%, 공화당 지지자 76%, 무당층 75%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통합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고, 디애틀린틱은 "푸틴이 미국을 통합시켰다"고 했다.
바이든, 최선이었나… 지지율은 껑충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초강경 대응이 미국인 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임기 이래 최저 수준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덩달아 올랐다. 미 공영라디오 NPR가 지난 1~2일 성인 13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7%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진행된 조사보다 8%나 올랐다. 지난해 8월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물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 등으로 올해 1월 말 33%까지 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수준이다.
현지 언론은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지지율(10%)이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 2일 국정연설 이후 이례적인 급등세를 보였다"며 "전반적인 지지율 상승은 민주당과 무당파 덕분이지만 공화당 지지율이 한 주 새 6%에서 10%까지 뛰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발판 삼아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지만 국내 선거에선 경제가 핵심인 만큼 민주당의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이 ‘푸틴발 인플레이션’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올여름 내내 물가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민주당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CNN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의 활약은 선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내다봤다.
하지만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바이든의 대응책을 놓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초기부터 미국이 강경 대응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존 볼튼 전 미국안전보장이사회의(NSC) 보좌관은 최근 독일 RND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이 어떤 종류의 개입도 없을 것이라고 계속 강조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서방의 개입 여지를 배제함으로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더욱 대담하게 행동에 나설 수 있게 길을 터줬다는 주장이다.
유럽 순방 바이든, 또 한 번의 시험대
오는 24일로 예정돼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은 그에게 또 한 번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사태가 장기화되고 글로벌 경제에 대한 충격이 거세지면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NATO 동맹국·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과 주요 7개국(G7) 정상 등을 만난 뒤 25일 폴란드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지난 1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 이은 이번 유럽 방문에서 바이든이 유럽 동맹국들과 어떤 해결책을 도출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 동맹국들로부터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원유 수입 금지에 미온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폴란드 등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은 강력한 제재를 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공급망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경제 협력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러시아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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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은 "미국과 유럽 등 동맹국들은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가능한 한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한편 더 광범위하고 위험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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