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당신이 울지 않으면 좋겠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취임사에서 말했다고 한다.


“저는 평생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웃도록 노력했습니다. 앞으로의 5년도 여러분이 울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그는 코미디언 출신의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시절의 영상을 보면 그는 실로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국민들을 울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지, 그리고 그에게 73%라는 경이로운 지지율로 화답한 국민들에게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을지, 그만큼 우크라이나의 모두가 절박했던 모양이라고 나는 짐작할 뿐이다.


누군가는 코미디언 같은 정치 초보를 대통령으로 뽑으니 전쟁이 난 게 아니겠느냐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조롱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그 시절 그 공간에 그 국민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감히 알 수 없다. 코미디언 후보가 나왔다고 해서 대선이 코미디가 되고 그 국민들도 코미디언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불과 며칠 남은 대한민국의 대선이 누가 보아도 더 코미디가 아닌가. B급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하지 않을 천박한 말들이 오간다. 각 후보의 유세 현장 영상을 보다가 나는 너무나 많이 웃었다. 정치인과 그의 지지자들이 코미디언이 되어 버린 우리가 누구의 정치를 조롱할 수 있나. 코미디언이 정치를 하고 정치인이 코미디를 한다는 농담은 이미 해묵은 것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남았다. 도망칠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자신과 가족의 국외 탈출을 돕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예정된 전쟁을 막는 데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그는 애초에 국민을 웃게 하겠다는 쉽고 멋진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울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 가진 무게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정치가 아니라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웃게 하는 일보다 울지 않게 하는 일이 더욱 어려운 법이다.


곧 보게 될 우리의 새로운 대통령은 어떨까. 그러한 국가적 재난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 그 전에 나와 당신은 어떠한가. 모두에게는 웃게 해야 할, 절대로 울지 않게 해야 할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 섬기거나 돌보는 연애와 우애와 가족애의 대상들. 관계를 흔들만한 재난 앞에서 나는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울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을 보며 정치뿐 아니라 한 개인이 가져야 할 품격에 대해 배운다. 소중한 사람의 사랑과 신뢰를 얻는 가장 숭고한 방법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이 모두 웃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도 나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네가 울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AD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