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점심시간은 단순히 먹는 시간이 아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오매불망 기다려지는 휴식 시간이며, 누군가에는 창작욕이 샘솟아 끼니를 거른 채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간이다. 강지희, 김신회, 심너울, 엄지혜, 이세라, 원도, 이훤, 정지돈, 한정현, 황유미 작가는 각각 산문 다섯 편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점심시간과 공간에 새로운 질감과 부피를 더한다. 점심시간에 초점을 맞춘 글, 점심 때 쓴 글이 다채롭게 담겼다.

[책 한 모금] 점심에 만나요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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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정규직이 점심을 거르기 일쑤고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 누군가는 식사를 챙기고 몸 관리를 하는 것 역시 사소하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식사 메뉴만을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점심을 거르는 건 그 사람이 나약한 의지나 낮은 자존감으로 자기 관리를 놓쳐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상황의 문제일 때가 많다. <26쪽>


사무실 막내였던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부장님이 오늘은 초복이니 삼계탕을 먹자고 하면 그날은 입구에 각종 화분이 잔뜩 놓여 있는 삼계탕집 좌식 테이블에 앉았다. 이사님이 특별히 회를 쏘겠다고 하면 대리님 차를 얻어 타고 도시 중심가에 있는 회 식당으로 향했다. 삼계탕이고 회 정식이고 다 싫었다. 내가 원하는 점심 메뉴는 혼자 말없이 먹는 구내식당 밥이었다. <42쪽>

평일의 점심은 어쩐지 쓸쓸하다. 아무리 맛있는 메뉴를 선택해도 속도를 내서 먹어야 한다. 속을 터놓고 회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는 없어진 지 오래. 내가 좋아하고 신뢰했던 이들은 모두 떠났다. 가끔 찾아와주는 전 동료, 기꺼이 속내를 드러내도 두렵지 않은 몇몇의 사람, 일로 만났지만 친구가 된 선후배들을 만나지 않는 한, 나의 점심은 여전히 외로울 전망이다. <98쪽>


사실 회사에서 먹는 점심 식사는 가장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먹는 밥이라는 점에서, 때로는 입안 가득 떠 넣는 한 숟갈이 참으로 버겁게 느껴진다. 어떠한 목적 없이, 저마다의 밥벌이를 위해 좁고도 넓은 대한민국을 돌고 돌아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끼리 취향 따위 고려하지 않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먹는 식사는 얼마나 애석한가.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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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 강지희 외 9명 | 307쪽 | 1만4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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