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대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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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됐을 때 기존의 유리한 근로조건을 계속 적용받기 위해서는 그 같은 근로조건이 개별 근로계약에 명시돼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무효로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97조를 반대해석하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근로자와 사용자가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을 상회하는 근로조건을 개별 근로계약에서 따로 정한 경우에 한정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한 사립대학 교수 A씨가 B대학을 운영하는 C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중 피고 C법인 측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취업규칙과 개별 근로계약의 우열관계,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1994년 3월 B대학교 조교수로 신규 임용된 뒤 계속 재임용돼 2005년 4월 정교수로 승진 임용됐다.


C법인은 1998년까지 연공서열의 호봉에 따른 봉급과 각종 수당을 더한 금액을 보수로 지급하는 '호봉제'를 유지하다가 1999년 교원의 직전년도 성과를 반영한 연봉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는 '연봉제'로 급여 체계를 바꿔 2000년부터 시행했다.


A씨는 급여 체계 변경이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고,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데도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며 2007∼2016년의 임금 차액분을 요구하는 소송을 잇따라 내 승소했다.


C법인과 A씨의 임용계약이 반복적으로 갱신돼 연쇄적 근로관계가 인정되는데, 재임용 과정에서 A씨가 연봉제 변경을 수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A씨는 처음 임용된 1994년 이후에는 재계약 때 별도로 임용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근로조건 관련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다른 교수들과의 소송에서도 연이어 패소한 C법인은 2017년 연봉제로의 변경을 놓고 재직 전임 교원 145명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했고, 107명의 투표 참가자 중 100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그럼에도 A씨는 물러서지 않았고 2017학년도분 급여 차액(3500여만원과 지연이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와 C법인 간의 호봉제 근로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임금 관련 사항을 취업규칙에서 정할 수 있기는 하지만, 취업규칙 내용보다 근로계약상의 근로조건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면 당연히 근로계약이 우선한다는 이유였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이유 대부분을 그대로 원용하며 일부를 수정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의 계속적 근로관계가 1994년 3월 1일부터 계속, 반복적으로 갱신돼 왔고, 원고의 경우 근로계약에 따라 호봉제로 급여액을 산정하는 것이 취업규칙에 따라 연봉제로 급여액을 산정하는 것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피고의 주장대로 2017년 8월 16일자 연봉제 변경 동의가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유리한 근로계약에 우선해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고 밝혔다.


그리고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1심 판결 이유 중 "원고와 피고의 계속적 근로관계가 1994년 3월 1일부터 계속, 반복적으로 갱신돼 왔고" 부분을 "원고가 기존의 호봉제가 시행되던 1994년 3월 1일 피고의 조교수로 신규 임용된 이래 원고와 피고 사이의 근로관계가 계속돼 왔으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임금을 기존의 호봉제에 의해 정하기로 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이 성립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원고와 피고 사이에 위와 같은 내용을 명시적으로 기재한 근로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로 수정했다. 즉 계약을 갱신하면서 별도로 호봉제 적용을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변경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호봉제가 적용된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의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A씨가 C법인과 호봉제 적용을 계약에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원들이 호봉제 변경에 동의한 2017년 이후에는 취업규칙상으로 바뀐 연봉제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조의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고 전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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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렇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지만, 위와 같은 법리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을 상회하는 근로조건을 개별 근로계약에서 따로 정한 경우에 한해 적용될 수 있는 것이고, 개별 근로계약에서 근로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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