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에도 조국에 헌신' 강기덕 선생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광주지방보훈청은 국가보훈처가 선정하는 이달(2월)의 독립운동가에 강기덕 선생이 선정됐다고 30일 밝혔다.
국가보훈처·광복회·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강 선생은 3·1운동을 시작으로 신간회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다.
광복 이후에도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188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명 중의 한 명(학생대표·보성법률상업학교 재학 중)으로 독립선언서를 각 학교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
2차 시위(3월 5일)에서 깃발을 흔들며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돼 1년 6개월 옥고를 치렀다.
1921년 11월 만기 출소해 고향인 원산에서 인쇄업에 종사했으나, 1924년 3월경 원산 보광학교 3·1운동 5주년 기념 인쇄물을 제작하며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또 조선농민의 참담한 현실을 강조하며 경작제도의 문제를 개선, 농민들의 수입증진을 위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경에 체포돼 6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출소 후 선생은 신간회 원산지회 발기인회에 참여해 설립준비위원과 상무위원을 맡았고, 1927년 7월 11일 신간회 원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간사로 선임됐다.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한 좌우연합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일제강점기 가장 규모가 컸던 사회운동 단체다.
신간회 활동을 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신문지법 중단을 촉구했고 소작쟁의에 관한 불량지주의 죄악 조사를 요구하는 함남기자 연맹사건에 연루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1929년 11월 만기 출소하여 원산지회 지회장에 선임된지 얼마 되지 않아, 원산 학생들이 일으킨 일제 반대 시위에 연루돼 1930년 2월 또다시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1931년 이후 선생은 원산노동조합 간부로서 노동조합의 재건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933년 또다시 징역 1년 2개월 옥고를 치렀고, 1935년 만기 출소했다.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중앙위원을 맡아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고 6·25전쟁 중 납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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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강기덕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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