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시초 휼렛패커드서 분사한 HPE 텍사스 이전에 업계 충격
법인세 없어 테슬라·오라클·델 등 텍사스로 …머스크는 거주지까지 옮겨
엘리엇 등 자본이득세 없는 플로리다로…원격 근무 확산도 이전 부추겨

[글로벌포커스]IT=실리콘밸리, 금융=월가…이젠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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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미국에서 한국 기업 삼성전자를 모티브로 만든 맥주 ‘더 새미(Sammy)’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바로 삼성이 미국 내 반도체 파운드리 제2공장 용지로 낙점한 텍사스주 테일러시다.


이 지역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맥주 제조사 텍사스비어컴퍼니는 삼성전자가 테일러시에 20조원을 투자해 공장을 짓는다는 발표를 보고 이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텍사스주의 친(親)기업 행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뿐만이 아니다. 이미 삼성 이전에 테슬라, HPE, 오라클, 델 등 수없이 많은 IT 기업들이 텍사스행을 택했다. 특히 휼렛패커드에서 분사한 HPE가 지난해 12월 본사를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서 텍사스 휴스턴으로 옮긴다고 발표하자 업계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빌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1938년 캘리포니아주 팰로알토 차고에서 창업하면서 실리콘밸리가 시작된 만큼 실리콘밸리의 시초이자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HPE의 본사 이전은 ‘테크 엑소더스’의 상징적 사건으로 화제가 됐다. 이어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오라클까지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본사를 이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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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미국 남부 선밸리에 위치한 텍사스주의 도시들은 미 컴퓨팅기술산업협회(콤프시아)가 지난해 말 발표한 조사결과에서 실리콘밸리와 뉴욕을 제치고 2년 연속 ‘최고의 기술도시’로 꼽혔다.


협회는 "텍사스주 오스틴에는 5500개 이상의 IT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해있다"며 "향후 5년간 텍사스에서 질 좋은 IT 관련 일자리가 16%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단 텍사스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텍사스주를 비롯해 남부에 위치한 ‘선벨트’ 지역 중 하나인 플로리다주 역시 뉴욕에 본거지를 둔 기업들을 속속 흡수하고 있다. 텍사스주가 신(新) 실리콘밸리라면, 플로리다주는 신(新) 뉴욕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행을 택한 기업들로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세계 4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등 금융사가 대부분이다. 또 억만장자 투자자인 칼 아이칸과 존 튜더 존스, 데이비드 테퍼 등도 사무실을 플로리다주로 옮겼다. 골드만삭스는 주요 사업부 중 하나인 자산운용사업부를 플로리다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전통 산업도시인 ‘러스트벨트’를 ‘선벨트’가 대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선벨트는 미국 남부에 위치한 애리조나, 택사스, 플로리다, 캐롤라이나 지역을 일컫는 것으로 세금이 저렴하고 따뜻한 기후가 매력적인 곳이다.


특히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와 뉴욕을 떠나 속속 남부로 모이는 데는 저렴한 세금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텍사스주는 미국 50개 주 중 가장 낮은 법인세를 책정했다. 주 차원의 법인세를 별도로 부과하지 않고, 최고 1%의 영업세만 부과하고 있다.


물론 모든 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방정부 법인세(21%)는 별도다. 세금을 적게 걷는 대신 기업을 더 많이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2020년 한 해 동안 65만3000명의 인구가 캘리포니아주를 떠났고, 이 중 8만2000명이 텍사스주로 이주했다.


텍사스주는 법인세뿐만 아니라 개인소득세도 없다.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 본사뿐 아니라 거주지까지 아예 텍사스주로 옮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신(新) 월가로 떠오른 플로리다주도 마찬가지다. 플로리다주는 개인소득세나 자본이득세가 전혀 없다. 뉴욕주가 소득의 약 13%를 지방세로 거둬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대유행) 이후 재정위기에 처한 뉴욕주가 억만장자들에 대한 부유세 신설을 공론화하면서 탈뉴욕행은 가속화됐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최한 콘퍼런스 ‘글로벌 뱅킷 서밋’에서 "높은 세금은 뉴욕의 글로벌 금융·산업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욕은 스스로를 매력적인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인센티브, 세금, 그리고 시민들의 생활비"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원격·재택근무가 확산된 점도 기업들의 선벨트행을 부추기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와 금융가가 모여있는 뉴욕은 미국에서도 사무실 렌트비가 가장 비싼 도시로 꼽힌다. 주거비와 생활비도 비싸기로 유명하다.


미국 우체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30만명 이상이 대도시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가장 인구유출이 두드러진 도시는 뉴욕(맨해튼·브루클린)이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LA)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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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회사인 웨스트몬로는 대도시에 위치한 기업 4곳 중 1곳이 현재 이전을 고려 중이며, 4%는 이미 이전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이 본사 이전을 고려한 이유는 고비용 39%, 세금 21%, 부동산 16%, 규제 8%로 조사됐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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