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설강화' 1회 더 보여준다고 생명 연장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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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역사왜곡 '오해'를 벗기 위해 폐지 대신 1회를 더 보여주겠다는 '설강화'다. 초강수도, 이례적 정면돌파도 아니다. 편성 강행을 위한 시간벌기식 해명에도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자 내놓은 면피성 입장에 불과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종합편성채널 JTBC는 23일 '설강화'(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 논란에 대해 "드라마 특성상 한 번에 모든 서사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를 덜어드리고자 방송을 예정보다 앞당겨 특별 편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방송되는 '설강화' 3~5회에서는 남파 공작원인 수호가 남한에 나타난 배경과 부당한 권력의 실체가 벗겨지며 초반 설정과의 개연성이 드러나게 된다고 예고했다.


또 안기부는 남파 공작원을 남한으로 불러들이는 주체임이 밝혀지고, 본격적으로 남북한 수뇌부가 각각 권력과 돈을 목적으로 야합하는 내용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비밀리에 펼치는 작전에 휘말리는 청춘들의 이야기도 전개된다는 것이다.

JTBC는 이전에도 지금도 '더 보라는 식'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지난 3월 유출된 '설강화'의 시놉시스 일부 내용이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자, 완성된 작품을 직접 보고 확인해달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룹 블랙핑크 멤버 지수(김지수)가 연기한 여자 주인공인 영초는 천영로 선생을, 남자 주인공인 임수호는 임종석, 임수경, 윤이상 등을 연상 시켜 뭇매를 맞았고, 제작진은 영초에서 영로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설강화'는 사전 제작을 이어갔고, 9개월이 흘렀다. 지난 18~19일 베일을 벗은 드라마는 역풍을 맞았다. 일각에서는 민주화폄훼, 안기부 미화 등 우려를 그대로 노출한 방송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간첩과 안기부 사이 추격 장면에 민주화 운동 당시 사용된 '솔아 푸르른 솔아'가 삽입되거나, 최루탄이 터지는 장면 연출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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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배경에 둔 '가상'의 이야기로 봐 달라던 '설강화'는 시대의 엄혹함은 극적으로 소비하면서 아무 고민 없는 대학생과 숨어든 간첩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 질타를 받았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찬 시대, 한 몸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수많은 청춘의 피와 외침이 깃든 시대다. 그렇기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시대가 주는 무게감과 군부독재 폭력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JTBC 측은 지난 21일 "역사 왜곡과 민주화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며 "앞으로 전개를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설강화'를 향한 비판은 계속됐다. 거센 역사왜곡 논란에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제작진의 태도가 문제로 지적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고 질타했다.


이어 "전두환 국가전복기의 간첩조작, 고문의 상처는 한 세기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살아 계신다"며 "엄혹한 시대에 빛을 비추겠다면, 그 주인공은 독재정권의 안기부와 남파간첩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땀, 눈물을 흘렸던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33만 명 이상이 '설강화' 방영 중단을 촉구하는 서명을 했으며, 협찬사 다수가 드라마 광고를 철회했다.


청년들도 분노했다. 세계시민선언은 2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타도한 역사를 가진 국가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에서 국가폭력을 미화하는 듯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수출되기까지 하니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지탄했다.


이어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맞선 이들을 모독했다"며 "지금도 남아있는 전 세계 독재 국가들에는 세월이 지나면 그들이 겪는 국가 폭력도 미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경험을 겪지 못한 세대에 왜곡된 역사관을 가르치고 무작정 국가폭력 미화 행위까지 정당화하는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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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강화' 후속으로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원작 소설 '장야난명'(동트기 힘든 긴 밤)은 출간 이후 시진핑 정부 선전 소설이라는 의혹을 받았고, 작가 쯔진천이 홍콩 민주화 세력 폄훼했다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여 2회 만에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원작도 '장야난명'이었다. 잇따른 동북공정으로 대중문화계가 긴장하는 분위기 속, 중국 원작 드라마 제작에 우려의 시선이 쏠린다.


JTBC는 3회를 방영할 시간을 벌었다. 당장 내일부터 '설강화'가 전파를 탄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그 시대를 살아온 많은 피해자와 역사의 산증인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그들이 '설강화'를 지켜볼 것이다.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주인공이 알고 보니 이렇더라는 식의 반전으로 '설강화'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임수호(정해인)와 은영로(지수)가 30년 뒤인 현대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면 모를까. 얄팍한 연출이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멋부림으로는 안 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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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강화'가 시대에 발 붙인 두 주인공의 결합을 그리면서 80년대를 배경으로 끌어온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방송이 끝난 후 JTBC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 더 보라는 입장을 또다시 되풀이할지 지켜볼 때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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