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거장들 : 보이만스 판 뵈닝언 박물관 걸작전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인공지능
이성이 만든 첨단문명이 지배하는 세상
팬데믹·핵위협·기후위기 등
이성으로 해결 못한 문제도 산적

초현실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아닌
무의식·욕망·꿈·우연성 파고들어
상상력 자극해 자유로운 해석 가능

르네 마그리트·살바도르 달리 등
180여점 전시, 내년 3월6일까지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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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보고 서있다. 기이하게도 거울이 비추는 건 얼굴이 아닌 뒷모습이다. 그의 옆엔 책 한 권이 놓여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은 거울에 정상적으로 반사된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모순.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려 했을까.


이 그림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금지된 재현’(1937)이다. 거울이 현실의 재현이라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회화로 재현했기에 ‘금지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것이다. 마그리트 그림의 매력은 보는 이에게 자유로운 사유와 다채로운 해석을 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생각은 ‘양자역학’에 머문다. 양자역학은 관측이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탓에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는 평소엔 파동상태지만 관측되는 순간 입자로 바뀐다. 이는 양자역학이 규명한 사실이다. 남자가 거울로 자신을 ‘관측’한 순간 본질은 뒤돌아서며 관측되지 않은 책만 그 존재를 본연히 드러낸다는 해석. 마그리트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 상식과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의 불완전함을 지적한 게 아닐까.


살바도르 달리의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1936).

살바도르 달리의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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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가 활발히 활동하던 20세기 초는 양자역학이 학문적으로 가장 활발히 논의되던 시기다. 당시 철학과 예술도 양자역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마그리트의 첫 개인전은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는데 당시 브뤼셀에서는 ‘물리학자 어벤져스’ 사진으로 유명한 제5차 솔베이 회의도 열리고 있었다. 이 회의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했다.

마그리트의 작품을 비롯해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막스 에른스트(1891~1976), 마르셀 뒤샹(1887~1968) 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의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 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이란 제목으로 초현실주의 작가 작품 180여점이 내걸렸다.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에 전시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1924).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에 전시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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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dadaism)에서 파생됐다. 다다이즘은 1차 세계대전 말 발생한 문화예술 운동의 한 조류다. 서구와 근대를 지탱해 온 이성과 합리성이 참혹한 전쟁으로 귀결된 데 대한 반작용으로 전개됐다. 모든 사회적·예술적 전통을 부정하고 반이성·반도덕·반예술을 지향하는 게 특징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이성이 아닌 무의식·욕망·꿈·우연성 등을 파고들었다. 전시장 초입엔 초현실주의의 시작을 알린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의 ‘초현실주의 선언문’(1924)도 전시돼 있다. 책에는 이런 문구도 나온다.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기이한 것은 무엇이든 아름답다. 사실 오직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장 전경.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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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태동한 지 약 100년이 됐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을까. 인간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과학주의의 정점에서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인공지능(AI) 등 각종 첨단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모두 양자역학의 산물들이다.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무역분쟁·핵위협·난민·기후위기 등 인간 이성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오히려 그것이 야기하기도 한 각종 문제들도 산적하다. 언제든 또 다른 형태의 반이성 운동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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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초현실주의가 다시 주목받는 것도 그래서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이 가닿지 못한 영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해 궁극적으로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과학발전이라는 것도 결국 공상적인 인간의 마음 위에서 이뤄 온 결과물이다. 전시는 내년 3월6일까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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