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시장친화적 금융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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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이후 ‘친시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근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잇따라 만나면서 ‘사전 예방적 감독’을 강조하면서다. 제재 중심의 사후적 감독보다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는 사전적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기업가치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강력한 제재보단 사고 요인을 미리 알고 개선하는 것이 훨씬 부담을 덜 수 있다.


정 원장은 이달 초 금융지주회장과 간담회에서 종합검사 폐지를 시사했고, 시중은행장을 만난 자리에선 은행 건전성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은행이 리스크 취약 요인을 파악해 스스로 개선하도록 하는 ‘가이드’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증권사 CEO와 간담회에선 금감원이 시장조성자의 시장질서 교란행위와 관련해 500억원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한 결정에 대해 재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임자인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키코(KIKO) 사태를 다시 끄집어내 배상을 권고하는 등 금융회사와 대립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행보다. 이 때문에 정 원장의 ‘친시장’ 발언은 금융회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쏟아낸 ‘윤석헌 체제 지우기’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금감원은 2019년 ‘국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 손실 사태로 손태승 우리은행 회장을 중징계했는데, 손 회장이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라임을 비롯한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금융사 CEO 중징계를 예고한데다, 금융사 제재만을 위한 ‘먼지털기식’ 검사의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 만큼 국면 전환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정 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감독 당국의 재량적 판단과 결정이 법과 원칙에 우선할 수는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금융감독 행정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반복적인 친시장 발언으로 금감원 본연의 감독 기능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금감원은 이달 예정된 우리금융그룹에 대한 종합검사를 보류했다 비판 여론이 나오자 연내 시행 계획을 밝혔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2대주주인 외국인(알리페이)의 지분을 금감원에 신고하지 않았는데 본지 취재가 들어가자 금감원 관계자가 카카오페이에 신고 의무를 알려주기도 했다. 정 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이라며 ‘업계와의 소통’을 강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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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의 설립목적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등의 수행을 통해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금융소비자연대회의가 "시장을 감독하고 교란 행위를 제재해야할 금융감독원의 장(長)이 친시장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어 개탄스럽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금융통’인 정 원장은 금감원의 설립목적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금감원장인 그를 ‘친시장’이라고 쓰고 ‘레임덕’이라고 읽는 이유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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