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면 국방물자생산법 사용"…반도체 자료 받은 美, 다음 스텝은
美 바이든 정부, 추가자료 요구 가능성 촉각
반도체 업체 제출 자료엔 고객사 관련 정보 포함 안돼
미 상무장관 "자료 불충분 땐 추가행동…칩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국내기업·정부 긴밀대응 필요…문승욱 산업부 장관 미국行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정현진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요청한 반도체 자료 제출 시한인 8일(현지시간)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대부분 자료를 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제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시선은 추가 압박 가능성을 향하고 있다. 업체들이 고객사라는 핵심 기밀을 보호하는 선에서 자료를 제출한 상황이어서 미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정보를 받아들었는지에 따라 향후 움직임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에 제출한 자료에는 고객사 자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고객사와의 계약상 공개가 불가능하고 이들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 업체들의 설명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도 지난 5일 미 상무부에 자료를 제출했으나 고객사 정보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다.
車 때문에 시작한 자료 요구… 美 ‘추가 행동’ 할 수도
이처럼 미 상무부에 제출한 자료에 일부 정보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결국 미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가가 중요해졌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정보를 요구한 것인 만큼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정도의 정보가 제출됐다면 추가로 정보를 달라고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앞서 지난 9월24일 요구한 정보는 최근 3년간의 전체 매출과 제품별 매출, 반도체 재고 수량, 주문 내역, 고객사 정보 등 총 26가지로 일반적으로 반도체 업체들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기밀로 보호하고 있는 정보다.
미 연방정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TSMC, 미국 마이크론, 독일 인피니온 등 주요 반도체 업체의 제출 자료를 살펴보면 공개 자료에는 내용을 거의 기재하지 않았고 별도로 기밀 자료를 제출했다. 특히 대표적인 차량용 반도체 생산업체인 인피니온의 경우 공식 서류 외에도 차량용 반도체시장 변화, 고객사의 수급 부족 사태, 지난 8월 반도체 공급망 이슈에 대한 관점 등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기밀 서류를 추가로 제출했다. 고객사 내용은 자료에서 배제했을 것으로 보이나 그 외 정보도 공개 수위를 각 업체에 따라 달리 정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 정부가 이를 꼼꼼하게 살펴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이날 업체들의 자료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추가 행동(further action)’을 취할 수도 있다면서 지난 9월 언급했던 국방물자생산법(DPA) 카드를 재차 꺼내들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에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칩이 어디로 가고 있고 사재기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면서 "국방법을 사용하길 원하진 않지만 필요하다면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미국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가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따른 잇단 완성차 업체의 타격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현재의 공급망 문제와 병목현상을 얼마나 파악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눈치싸움 하는 반도체 업계… "신중 대응해야"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관련 행보가 전 세계적인 공급망 수급 이슈에서 시작됐고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가운데 나오는 것이어서 향후 국내 기업과 정부가 긴밀하면서도 신중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업계와 전문가들은 의견을 내고 있다. 미 정부가 요구하는 배경이나 원하는 수준의 정보 수위 등을 파악하고 기업들의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등의 물밑 접촉을 업계는 정부에 바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수차례 대면·화상 회의 등을 진행하며 대응책을 논의해왔고 미국 정부 측에 기업의 질의 등을 전달하며 소통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이날 자료를 제출했다면서 고객 관련 정보를 제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상무부와 협의를 거쳤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추후 대응 차원에서 이날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산업부는 11일까지 예정된 문 장관의 이번 방미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 협력성과를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공급망 정보 제출과 한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수출 제한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문 장관은 사실상 러몬도 장관 등과 만나 이번에 제출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제한적인 정보 제공이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설명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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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의 이러한 요구는 차량용 반도체 문제"라면서도 "우리 정부와 기업이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거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는 공급망을 주도하는 대만 등 글로벌 기업의 동향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의 요구 수준에 따라 정부의 대응이 달라져야 할 것이라면서 "현 수준의 요구라면 부드러운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만약 무리한 요구가 오게 된다면 국내 반도체 업체와 산업의 기술보호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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