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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산책] 책익다 - 책 한권&술 한잔에 '사춘기 어른이'들을 위로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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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기능에 펍의 컬래버한 공간
마스코트 곰인형 '이꼼이'도 인기
"술 마시다보면 감정에 더 충실해져 읽는 책에도 쉽게 몰입할 수 있죠"
손님 고른 책에 어울리는 술도 추천

사춘기란 오춘기·갱년기의 다른 이름
일상의 고민들 털어넘기는 공간 지향

매장 중앙에서 바라본 '책익다' 마스코트 곰인형 '이꼼이'와 책이 전시된 책장.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매장 중앙에서 바라본 '책익다' 마스코트 곰인형 '이꼼이'와 책이 전시된 책장.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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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랐어.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매일 밤을 울던 날.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마음이 편할까.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


가수 볼빨간사춘기는 '나의 사춘기에게'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이 노래를 지은 메인 보컬 안지영은 자신의 사춘기를 그대로 담았다고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뮤직페스티벌 '청춘아레나2017' 무대에서 "단순히 나이(로 따지는) 사춘기가 아니라 성장통을 느끼는 모든 분들께 위로가 되고, 희망을 드릴 수 있는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의 유튜브 영상 댓글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일기장처럼 보인다. "가사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하나하나 다 내 얘기 같아서 울컥한다.",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취업준비생이 됐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몰라 힘든데 부모님은 나에 대한 기대가 커서 더 힘들다.", "그때 안 죽고 살아서 이젠 흰 머리도 난 애엄마가 된 내가 자랑스럽다."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호흡을 다듬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독립서점 '책익다'가 대학가에 자리잡은 이유는 힘든 시절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어서다. 책익다를 연 전유겸 대표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민해봤다. 나이에 따라 정해진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20·30세대가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젊음의 거리'에서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책익다가 위치한 골목으로 접어들면 근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조용함과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책익다가 '나만 아는 특별한 곳'을 찾아다니는 인스타그래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다.

벽면에 위치한 테이블에 책이 전시돼 있다. 책 표지에는 전유겸 대표의 한줄평이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다.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벽면에 위치한 테이블에 책이 전시돼 있다. 책 표지에는 전유겸 대표의 한줄평이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다.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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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런 걸까' 싶던 어린 시절의 고민이 지금의 전 대표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이 계속 있었어요." 이러한 고민은 경영학도였던 전 대표가 심리학을 복수전공한 계기가 됐고, 지난 1월 책익다 오픈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아직 답은 못 찾았어요. 그런데 '나는 왜 이런가'가 아니라 '나는 원래 이래'라고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이런 나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서점까지 열게 된 거죠."


전 대표는 책익다를 '나를 마주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욕망은 외로움인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그래서 인테리어도 따뜻함을 연출하는 데에 주안점을 뒀다. 오래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고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전 대표의 목표였다. "독립서점의 매력은 사람 냄새도 나고, 동네 특유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고, 사랑방 같은 느낌도 드는 것 아닐까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렌지빛 조명과 함께 매장의 마스코트 곰인형 '이꼼이'가 가장 먼저 반긴다. 매장 중앙의 바 테이블에 앉은 이꼼이의 앞자리는 모든 손님들이 탐하는 인기석이다. 이꼼이의 이름도 단골손님이 작명가를 자처해 지어줬다.

책익다는 기존 서점의 기능을 넘어 주류를 제공하는 북펍(Book Pub)을 겸하고 있다. 대개 독서는 커피나 차를 내놓는 카페와 어울릴 것 같지만 세계적인 대문호 가운데 다수가 술을 사랑했던 점을 떠올려보면 그리 별난 조합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책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히또를 즐겨 마셨고 '카라마조프 형제들'로 유명한 도스토옙스키는 매일 아침을 보드카 한 잔으로 열었다. 원고 청탁을 거부하는 괴테에게 고급 포도주 한 상자를 보내 마침내 기고문을 받아냈다는 출판사 직원의 일화도 전해진다. 전 대표는 "술을 마시면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하게 되고, 책 내용에도 훨씬 몰입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손님이 고른 책에 어울리는 술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좋은 문장을 만나 창작욕이 샘솟는다면 그 자리에서 글쓰기에 도전해볼 수도 있다. 평소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괜히 겁먹어 망설여왔다면, 취기를 빌려보자. 전 대표는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앱에서 사람들을 모아 책익다에서 매주 글쓰기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강사는 없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글을 나눠 읽고 서로 피드백해준다. 글의 점수를 매기고 못난 점을 찾기보단 긍정의 언어로 좋은 점을 발견해주는 모임이다. "글을 통해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는 전 대표는 조만간 독서모임도 열 계획이다.

'책익다'에 마련된 방명록 '날적이'에 손님들이 방문 후기나 책 감상평, 낙서 등을 남겼다.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책익다'에 마련된 방명록 '날적이'에 손님들이 방문 후기나 책 감상평, 낙서 등을 남겼다. 사진=박현주 기자 phj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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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면 '날적이'를 찾으면 된다. 날적이는 일기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책익다에 다녀간 손님들이 그날의 감상을 남기는 방명록이다. 거창한 문장을 남기지 않아도 좋고 규칙도 없다. 날적이는 지인에게 털어놓기 부끄러운 고민부터 끄적임, 낙서까지 모두 흔쾌히 받아들인다. 다른 이의 고민에 댓글을 달아 공감을 표할 수도 있다. 전 대표는 날적이를 만든 이유에 대해 "때때로 우리는 1년 후에는 기억도 안 날 고민으로 괴로워하지 않나. 그때 나는 이런 감정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고"라며 "손님이 다시 찾아왔을 때를 위해 지금의 모습을 그냥 남겨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손님들은 날적이에 인상적인 책 문구를 옮겨 적거나 같이 온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결혼이 하고 싶다', '선하게 살고 싶다'는 등 소망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가 한심해 견디기 힘들다', '외롭다'고 날적이에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1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바람이 이는 걸 보면, 사춘기란 어쩌면 오춘기, 갱년기와 같은 다른 이름으로 평생 함께하는 걸지도 모른다. 책과 술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전 대표가 서점 이름에 '익다'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익는다는 건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쌓여서 더 좋은 향이 나고 깊은 맛을 낸다는 의미가 있어요. 술뿐 아니라 책과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 책 한 권, 술 한 잔에 고민을 털어 넘기고 자신을 다독여주면 어떨까. 이 또한 우리가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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