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BIFF 제공(이하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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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영화가 좋아서 그걸 좇으며 살았어요. 이제 끝난 나이에요. 영화 인생을 좀 훨훨 살았다면 삶이 더 호기로웠을 텐데. 그놈의 상. 아이고. 이제 지나갔으니 참. 하여튼 잘 지내왔네요. 허허."


임권택 감독은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학교 샌텀캠퍼스 소극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102편을 수놓은 영화 인생을 돌아봤다. 솔직했고, 유쾌했다. 60여년간 대중을 웃고 울린 맛깔나는 입담이 부산을 꽉 채웠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The Asian Filmmaker of the Year) 수상자로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임 감독을 지목했다. 이는 매해 아시아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 수여 하는 상이다. 그는 지난 6일 진행된 개막식에서 트로피를 받았다.


소감을 묻자 임권택 감독은 "이제 영화를 만들어서 출품해 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끝난 인생인데 공로상 비슷하게 받는 거 같다. 상은 더 격려하고 노력하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보는데 나는 끝나는 나이"라며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생이 더 남은 분에게 상이 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1934년에 태어난 임권택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해 102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2002년 칸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2005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받았다. 이후 '서편제'(1993), '춘향던'(2000) 등 다수 작품에서 한국인의 한과 삶을 녹였다.


임권택은 누구보다 많은 트로피를 거머쥔 거장이지만 '상'이라는 단어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내 역량은 거기에 미치지 않는데 큰 영화제에서 끝없이 상을 타오길 바라는 기대 심리를 가지고 있는데 고달팠다. 그런 압력이 더 쫓기게 살게 만든다. 여유를 가지고 영화를 찍었어야 했는데 고통 속에서 작업을 했었구나. 제 책임은 아니다. 하하."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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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임 감독은 "꼭 빚진 거 같았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잔뜩 기대를 보내고 있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걸 일궈내지 못하는 어떤 열패감도 들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조금 채면이 섰지만, 영화제가 나를 옥죄었다"고 돌아봤다.


임권택은 1962년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를 시작으로 102번째 영화인 '화장'(2014)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며 아시아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그는 "100여 편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기에 생각나는 작품은 다 찍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못 찍은 것은 우리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 한국인의 모습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이젠 기회도 없고 기회가 주어진대도 사양하고 더 잘하는 감독에게 넘겨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재치 있는 입담은 여전했다.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던 임권택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비용을 많이 든다. 돈 가진 제작자를 아주 쉽게 작살내는 게 또 영화다. (안 되면) 제작자 죽이는 건데. 내가 연출하던 때에 비해 조금 안심이 된다"며 껄껄 웃었다.


최근 영화계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부침을 겪고 있다.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된 영화관에는 사람이 없고, 개봉을 앞둔 주요 배급사들은 일정을 줄줄이 연기했다. 우리는 다시 극장에 모여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임권택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영화계에 조언을 건넸다.


임 감독은 "극장에서 몰려가서 영화를 보며 위안받고 재미를 느끼고 보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코로나라는 것이 (생겨서) 우리가 살면서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쪽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참 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을 꺼냈다.


[인터뷰]임권택 "60년 영화 인생, 훨훨 즐기며 살 걸 그랬네요"[26회 BIFF] 원본보기 아이콘

[인터뷰]임권택 "60년 영화 인생, 훨훨 즐기며 살 걸 그랬네요"[26회 BIFF] 원본보기 아이콘


코로나가 끝나면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을까. 물으니 "그렇다"고 답했다. "심심해지면 영화관이 제일 시간 보내기 좋고 위안을 받기 좋은 곳 아닌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쭉 그래왔거든. 영화관이 생긴 이래."


임권택 감독은 '기생충'을 보고 봉준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좋았다고 말했다고. 그는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랬다. 우리 한국 영화는 완성도가 다소 부족한 점이 눈에 띄었는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 우리 영화가 이제 좋아지고 있다가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 들어왔다. 탄탄하게 가고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한다"고 칭찬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 누구인지 묻자 아내를 꼽았다. "한 번도 칭찬을 안 했는데. 처음으로 이런 자리에서 칭찬하고 싶다. 신세 많이 졌고요. 별로 수입도 없어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 아닌데 잘 견뎌줘서 아직도 영화감독으로 대우받고 산다. 아내한테 감사 말씀을 드린다." 인터뷰장 한켠에 자리한 아내 채령 씨는 이에 환하게 웃으며 박수로 화답했다. 부부는 다정하게 팔짱을 낀채 현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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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이슬 기자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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