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할 당시에만 해도 누구도 지금 같은 상황이 연출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9·11 테러 20주년을 기점으로 미국이 아프간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고, 이로 인해 미국의 외교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5월 초 미군 철수가 시작되자마자 탈레반은 무서운 속도로 아프간을 장악했다. 8월 들어 사태는 더욱 긴박해졌다. 수도 카불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무너졌고 미군은 쫓기듯이 아프간을 떠났다.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수송기에 매달렸다 떨어져 사망한 아프간인들의 모습을 보며 전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이 집권했던 1996~2001년간의 공포정치가 재현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보복하지 않겠다"는 탈레반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새로운 탈레반 세력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전 세계로부터 정상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겉으로는 인권을 존중하는 등 변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카불에서는 탈레반들이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결코 ‘질서정연하지 못한’ 철군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서툴렀던 대응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을 민주국가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1조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전쟁 비용을 치르고도 결과적으로 탈레반의 기세만 키워주는 꼴이 됐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철수 작전을 ‘대실패’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철군 이후에도 미국은 안팎으로 상당한 진통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비단 미국과 아프간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는 후폭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벌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프간이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의 요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파키스탄, 인도, 러시아 등 인접 국가들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레반이 지하디스트들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탈레반이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선언하자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벌써 기세등등해지고 있다. 이들에게 탈레반은 지하드(성전)를 통해 정부를 몰아낸 훌륭한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성스러운 전사’들이 의지력과 인내, 간교함으로 미국을 쫓아낸 사건은 세속 정부를 전복하려는 모슬렘들에게는 신의 가호가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며 "파장이 멀리,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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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은 테러뿐 아니라 난민에 대한 걱정도 크다. 난민 수용 문제는 국론을 분열시킬 뿐 아니라 극우 세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30만에 달하는 아프간 정부군이 7만명밖에 안 되는 탈레반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 위정자들이 반드시 얻어야 할 교훈도 있다. 민심은 언제든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등을 돌려 반대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 반대편이 탈레반처럼 무자비한 조직일지라도.


강희종 국제부장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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