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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인사이트]'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부터 쟁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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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사건 등 신상공개 느는 추세
얼굴 가린 고유정·백광석…맹점도 존재
헌법상 규정된 '무죄추정 원칙'
신상공개 정당성 근본적 의문도

‘160만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발생하는 대략적인 범죄 건수입니다. 강력범죄, 지능범죄, 교통범죄, 사이버범죄 등 범죄 유형도 다양하고 그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예방책을 알아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범죄 인사이트>에서는 최신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주요 범죄 양상을 분석하고, 예방·대처법과 정책적 변화까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으로 다시 이슈가 된 '피의자 신상공개'입니다.


과거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백광석이 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과거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백광석이 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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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피의자 백광석(48)과 김시남(46)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것은 지난 26일이다. 경찰은 당초 이들에 대한 신상공개를 검토하지 않았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새로운 증거가 확인되자 신상공개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를 개최하고 이들에 대한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들의 현재 얼굴은 제대로 공개되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의 현재 얼굴은 경찰에서 검찰로 신병이 넘겨질 때, 즉 송치 시점에 자연스럽게 공개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스스로 이를 벗지 않는 이상 강제할 방법은 없다.


앞서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38)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맹점'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고유정은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에도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고유정의 과거 얼굴은 공개됐으나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차례의 재판 과정에서도 현재 얼굴은 결국 공개되지 않았다.


늘어나는 신상공개

경찰의 피의자 신상공개 정보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났다.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총 32명이다. 이 가운데 24명은 강력범죄, 8명은 성폭력범죄 피의자이다.

특히 지난해 '텔레그램 박사방·n번방' 사건 이후 성폭력범죄 관련 신상공개가 크게 늘었다. 성폭력범죄로 첫 신상공개가 결정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을 시작으로 지난해 6명, 올해 2명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올해에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남성 1300명의 나체 영상을 녹화·유포한 김영준(29)과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를 받는 최찬욱(26)이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문호남 기자 munonam@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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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올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강력범죄 피의자는 백광석·김시남을 비롯해 '인천 노래방 살인사건' 허민우(34), '노원 세모녀 살해사건' 김태현(25)까지 포함하면 총 6명이다. 신상공개가 잦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피의자 '신상공개' 근거는?

우리나라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으로,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인 피의자·피고인 신분에서는 엄밀하게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신상정보 공개는 원칙적으로 필요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피의자 신상공개의 근거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나와 있는데, 주요 요건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공공의 이익'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욱 가치가 커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실제 지난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텔레그램 박사방' 공범 강훈(닉네임 '부따')은 신상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공공의 정보에 관한 이익이 강훈의 명예, 미성년자인 강훈의 장래 등 사익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판시했다.


"얼굴 가리고 이름 바꾸면 어쩌나" 보완 목소리

하지만 고유정·백광석 사례처럼 얼굴을 가릴 경우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경찰이 일명 '머그샷' 공개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머그샷의 경우 현행법상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머그샷 공개에 대한 경찰의 유권해석 요청에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얼굴을 가린 채 이송되는 고유정.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얼굴을 가린 채 이송되는 고유정.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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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경찰은 행정안전부로부터 신분증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개인정보 관련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받아 신상공개 결정 시 신분증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을 손질하거나 보완하는데에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신상공개 범죄자가 향후 개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경찰 출신인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조두순 등 신상공개 범죄자의 개명신청을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유죄 판결이 확정된 신상정보 공개 대상자가 개명신청을 할 경우 법원이 해당 신청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임 의원은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사회에 큰 충격을 끼친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함으로써 피의자 재범을 방지해 강력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며 "신상공개제도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범죄자의 개명신청을 불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들쑥날쑥' 신상공개…법적 논란도 계속

경찰은 각 시·도경찰청의 신상공개위를 통해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신상공개위는 앞서 특강법에 명시된 범행수단, 피해 정도, 범죄를 저지른 근거, 공공의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신상공개위에는 외부 인력도 참석하는데, 의사·법조인·교육자·언론인 등이 포함된다.


다만 신상공개위의 위원 자격·요건이 법령에 명시돼 있지는 않다. 신상공개 근거 법령인 특강법에도 없을 뿐더러 대통령령·부령은 물론 경찰청 훈령에서조차 없이 내부 지침만으로 운영되고 있어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시·도경찰청별 신상공개위 위원 구성에 따라 특히 이런 이유로 특정 사건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신상공개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5월 '분당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피해자 딸이 피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 이 사건의 경우 결국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5월 '분당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피해자 딸이 피의자 신상공개를 요구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 이 사건의 경우 결국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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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공개 시 적절한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앞서 5월 '주식부자' 이희진(35)의 부모를 살해한 김다운(36)이 제기한 진정을 일부 인용했다. 신상공개 대상이 되는 강력범죄 피의자에게 의견진술과 자료제출 기회를 부여하는 등 방어권을 보장해 인격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를 최소화하도록 규정을 정비하라고 경찰청장에게 권고한 것이다.


아예 현행 신상공개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올해 3월 발간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관한 헌법적 연구' 보고서는 신상공개제도 만능주의를 경계하며 헌법적 가치에서 신상공개제도를 다시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사회적 관심을 받는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 마다 공개대상 범죄나 공개대상 정보의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곤 하는데, 이는 범죄의 본질을 왜곡하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피의자 신상공개제도가 과연 헌법적으로 수용가능한 제도인지 재숙고하고, 또 피의자 신상공개제도가 초래할 위험성을 재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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