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인사이트]성착취·불법촬영·딥페이크까지…인격 말살하는 '사이버성폭력'
박사방·n번방 등 사회적 공분
유형 다양해지고 범죄수익 창출까지
피해자 절반 미성년자, '2차 피해' 방지 급선무
'범죄 의지' 끊어내야…위장수사 주목
'160만건.' 우리나라에서 한해 발생하는 대략적인 범죄 건수입니다. 강력범죄, 지능범죄, 교통범죄, 사이버범죄 등 범죄 유형도 다양하고 그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예방책을 알아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범죄 인사이트>에서는 최신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주요 범죄 양상을 분석하고, 예방·대처법과 정책적 변화까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박사방'·'n번방' 사건 등으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이버성폭력'입니다.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1. 지난달 9일 여성을 가장해 영상통화를 하며 남성 1300여명의 나체 영상을 녹화·유포한 일명 '제2 n번방' 사건의 피의자 김영준(29)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김영준은 2013년 11월부터 최근까지 1300여명의 남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피해자들의 음란행위 등을 녹화한 후 이를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영준이 촬영한 영상 2만7000여개(5.55테라바이트)와 저장매체 원본 3개를 압수했다.
김영준을 채팅앱 등에 여성 사진을 게시한 후 이를 통해 연락한 남성들에게 음성변조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여성으로 가장, 영상통화를 하고 녹화한 뒤 이를 텔레그램 등으로 유포·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아동청소년 7명을 자신의 주거지·모텔 등으로 유인해 유사 성행위를 하게 하고, 이를 촬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2. 남자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온라인에서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음란물을 보관한 혐의 등을 받는 최찬욱(26)의 신상정보도 지난달 22일 공개됐다. 최찬욱은 2016년 5월부터 10대 65명에게 접근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최찬욱이 그간 보관해 온 성착취물은 사진 3841장과 영상 3703편 등 6954개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중 일부는 본인이 직접 온라인상에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일명 텔레그램 '박사방'·'n번방'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산 사이버성폭력 범죄가 올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3월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사이버성폭력 불법유통망·유통사범 집중단속'을 추진 중인 경찰은 지난달 말 기준 423건·449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36명을 구속했다.
성착취·불법촬영·딥페이크…진화하는 사이버성폭력
사이버성폭력의 유형은 점차 다양화하는 양상이다. 경찰에 적발된 범죄 유형을 보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거나 협박·강요를 통해 성영상물을 제작한 '성착취물' 유형은 267건(검거 278명)에 달했다. 대구에서는 2019년 3월부터 최근까지 불법 성착취물 유통사이트를 운영하면서 1746개의 성착취물 등을 게시한 뒤 불법 도박사이트 배너 광고로 3억6000만원을 챙긴 피의자가 구속됐고, 부산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불법 성착취물 유통사이트를 운영하며 불법사이트를 홍보한 2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불법촬영물 유포는 62건(검거 69명)이었다. 경북에서는 지난해 9월 모텔에서 만취한 피해자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뒤 친구 4명이 참여해 있는 단체대화방에 유포한 피의자가 구속됐고, 올해 1월 전북에서는 피해자를 유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한 뒤 성폭행해 촬영·유포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 6명이 모두 구속되기도 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지인이나 연예인 등을 합성한 성영상물을 제작하는 '불법합성물' 범죄도 53건(검거 54명)에 달했다. 광주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합성프로그램을 이용해 대학 동기 등 13명의 얼굴과 타인의 신체 사진을 편집한 불법합성물을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한 피의자가 구속됐다. 또 불법 성영상물을 유포한 41건(검거 48명)도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돈 받고 유포…범죄수익 창출 구조로
사이버성폭력은 단순 소지를 넘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범죄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 검거 사례들을 보면 불법 성착취물 등을 메신저 등을 통해 판매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불법 이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경찰에 구속된 한 피의자는 2019년 10월부터 클라우드 계정 내 아동성착취물 1만8000여개를 소지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 1000만원의 부당이익을 취득했다. 또 다른 피의자는 올해 1~4월 텔레그램 채널 67개를 운영하면서 문화상품권을 받고 다수의 불법촬영물 등을 판매해 3023만원의 범죄수익을 챙겼다.
메신저를 통해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앞서 사례처럼 별도 사이트를 만든 뒤 배너 광고를 거는 방식으로 수익금을 창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해 7월부터 불법사이트 10개를 개설·운영하며 12만여개의 불법촬영물 등을 게시한 뒤 도박 매너 광고를 통해 1억5000만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경우도 있었다.
경찰이 적극적인 범죄수익 환수를 위해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 조치 등을 활용하는 이유도 근본적인 범죄 욕구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현재까지 경찰은 6919만원을 직접 압수하고, 3억1366억원에 대해 추징보전 조치하는 등 3억8000여만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환수 조치했다. 또 15명에 대해서는 세금 추징 등을 위해 국세청에 통보했다.
국민 알권리 보장과 관련 범죄 예방을 위한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도 활발해졌다. 지난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공범 남경읍·강훈(부따)·이원호(이기야), n번방 운영자 문형욱(갓갓)과 공범 안승진 등 6명에 이어 올해 김영준, 최찬욱까지 총 8명에 대한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8년에 걸쳐 남성 1천300여명의 알몸 사진·영상(일명 '몸캠') 등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김영준(29)이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나오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원본보기 아이콘피의자·피해자 모두 10~20대 집중…피해 회복이 먼저
사이버성폭력의 중요 특징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10·20대 젊은층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검거된 피의자 중 20대가 175명(39.0%), 10대가 151명(33.6%)이었다. 가해자 10명 중 7명이 20대 이하라는 의미다.
피해자의 경우 그 수준이 더욱 심각하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 378명중 절반인 190명(50.2%)이 미성년자였다. 20대 피해자도 147명(38.9%)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저연령층이 디지털성범죄에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한다.
사이버성폭력의 경우 어린 나이에 범죄피해를 입는 데다 2차 피해까지 발생하기 쉬워 피해 회복이 쉽지만은 않다. 경찰은 453건에 대해 삭제·차단 요청하고, 신변보호·상담소 연계·가명조서 작성 등 440건의 피해자 보호·지원조치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인식 제고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이 검거 활동과 병행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사이트 및 유튜브, 사이버예방강사 등을 활용한 온라인 홍보·교육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범죄예방 활동에 나선 것도 이 같은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변화의 핵심, 9월 '위장수사' 도입
지난해 박사방·n번방 사건 이후 사이버성폭력 수사 역량 강화와 피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변화는 이어지고 있다.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시행 중이고, 신속한 수사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시스템도 도입되고 있다. 경찰이 운영 중인 '불법촬영물 추적시스템'이 대표적으로, SNS나 해외 불법 사이트 등에 유포된 불법 영상물을 등록해 유포 경로를 탐지·분석하고 삭제·차단까지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위장수사' 도입이다. 올해 3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성범죄 수사에 위장수사 제도를 도입하는 개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9월부터는 위장수사가 가능해진다.
위장수사는 크게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로 나뉜다. 신분비공개수사는 경찰관 신분을 숨기고 성착취물 구매자인 것처럼 범인에게 접근해 증거 등을 수집하는 형태다. 신분위장수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가상인물의 신분증 제작까지 허용한다. 신분공개수사는 국회와 국가경찰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신분위장수사는 검사의 청구를 거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통제 규정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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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위장수사 도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익명성·유동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선제적 감시'가 가능해진다는 데 있다. 또 범죄자에 대한 범행 억제 심리를 형성해 범죄예방에 효과적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도입 초기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즉각적인 사이버성폭력 대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경찰의 숙제다. 경찰은 9월 법 시행 후 일선에서 즉시 수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위장수사 전담수사관 선발·교육 및 매뉴얼 제작 등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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