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올 상반기 사상 첫 수출 3000억달러 달성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세계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수출계약이 성사되더라도 이를 실어나를 수단이 마땅찮다면 상반기 수출 집계는 이보다 적었을 것이다. 수출 최대라는 실적의 근간에는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품을 실어나르는 선박의 역할 역시 상당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최근 들어 물동량 급증으로 배를 확보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그 역할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해양수산부를 포함한 정부 안팎에서는 3년 전 해운회사 HMM(옛 현대상선)의 대규모 선박 발주가 화제다. 당시 HMM은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맞춰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했는데, 해운 시황 회복 시점에 맞춰 선박이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효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HMM은 2018년 9월 2만4000TEU급 선박 12척과 1만6000TEU급 선박 8척 등 총 3조1531억원을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을 비롯해 수출입은행, 한국해양진흥공사, 민간 금융회사 등에서 조달해 발주했다.
하지만 3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는 결정이 있기까지 난관은 적잖았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조선과 해운업을 살려야 한다는 해수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들 업종이 불황을 면치 못하면서 정부 내에서도 반대가 상당했다. 재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실제 자금 융통을 맡은 금융위원회 모두 대규모 자금 투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HMM은 당시 연간 1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고 산은에서 자금수혈을 받는 처지였다. 선박을 추가로 늘려도 해운시황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부실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었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선박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해수부가 전세계 물동량 전망치를 들고 청와대를 설득한 끝에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는 현실화될 수 있었다.
HMM은 지난해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인 알헤시라스호를 시작으로 선박을 인도받아 차례차례 현장에 투입했다. 그리고 지난달 29일에는 20척 물량 가운데 마지막인 ‘한울호’ 출항식을 가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과 해운을 모두 살린 일거양득의 수가 됐다. 조선업계는 일감 가뭄에서 벗어났고 선복량을 늘린 HMM은 해운 운임이 오르면서 수익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가 없어 수출이 어려운 상황까지 나타났다. 국제 컨테이너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최근 4000선에 접근하며 집계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덕분에 HMM은 지난 1분기에만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HMM 컨테이너선 발주 과정에서 재정의 역할은 절묘했다. 퇴출 위기에 놓인 기업을 순식간에 정상화 대열로 끌어올린 공신이었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세제지원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또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계층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했다. 모두 중요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분야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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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째 반도체, 자동차에만 의존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엔진은 다양할수록 좋다. 재정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HMM 사례는 명확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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