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넘는 상품가입에 비대면 유도…규제 확대로 소비자는 불편(종합)
금소법 시행 100일 코앞
불만·부작용 가득한 현장 목소리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기하영 기자, 김효진 기자]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 영업점을 방문한 김민영(42세)씨는 운용상품으로 펀드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현금성 대기자산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때문에 펀드를 IRP 계좌에 담으려면 1시간30분은 걸리니 현금자산에 먼저 가입한 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펀드로 변경하라는 직원의 권유 때문이었다. 결국 김씨는 상품 추천이나 설명도 듣지못한 채 스스로 펀드를 골라 가입하는 ‘불완전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제정된 금소법이 다음달 2일로 시행 100일을 맞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당초 마련하기로 한 5가지 가이드라인 중 2개만 완성된 상태라 상품 설명시간 단축을 위한 비대면 상품가입 유도, 청약철회권을 악용한 대출취소 등이 급증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현장의 문제를 신속히 해소하지 못할 경우 금소법이 자칫 ‘규제를 위한 규제’로 전락해 그 취지와 효용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소법 시행 직후인 지난 4월 신한·우리·하나·IBK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금융상품 온라인 판매 비중은 평균 70%를 넘어섰다. 금소법 시행 이후 영업점 현장에서 직원의 상품 설명 시간 단축을 위한 비대면 상품가입 권유가 빈번해진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관행적으로 굳어진 불완전판매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금소법이 오히려 비대면 가입을 유도하는 구실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소비자 개인의 금융상품 가입에 따른 책임은 커진 반면 대면가입에서 가능했던 쌍방향 소통은 불가능해져 정확한 상품에 대한 이해 없이 가입하게 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소법 때문에 고객 응대 시간이 길어져 인터넷 이용이 쉬운 젊은층에게는 앱을 통한 서비스를 권할 수 밖에 상황"이라며 "직원 입장에서도 불완전판매 책임을 떠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대면 영업을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변심한 소비자의 청약철회권, 위법계약해지권이 남용되는 부작용도 문제다. 일정기간 안에 자유롭게 취소할 수 청약철회권을 악용해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가 신용대출을 일으며 자금을 활용한 후 대출계약 취소를 요구해 수수료를 환불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A은행 여의도 영업점 직원은 "특히 공모주 청약으로 단기자금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신용대출을 받았다가 청약금이 환불되면 청약철회권을 사용해 대출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며 "악용이 의심되더라도 은행 입장에서는 금소법 때문에 취소 요구를 100%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보험업계도 "위법계약해지권을 두고 향후 보험 철회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고객의 위법계약 해지 요구에 대비한 구체적인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금융광고 규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지만 일선 보험설계사들을 사이에서는 강화된 광고심의에 대한 불만과 실효성 의문도 제기된다. 금소법에 따라 금융광고는 반드시 내부 심의와 각 금융업권 협회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사전심의를 받고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상품 내용을 올리는 설계사는 전무한 상태다. 일부 설계사들은 광고심의를 피하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쪽지 등 폐쇄적 경로로 상품을 설명하는 우회 전략을 택하는 상황이다.
‘규제를 위한 규제’로 전락해서는 안돼
금소법 시행 이후 금융현장에서 빚어지는 혼란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30일 통화에서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면서 소비자 보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형식적인 절차가 늘어나는 건 분명히 큰 문제"라면서 "길고 번거로운 동의절차 같은 것을 계속해서 유지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금융소비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확대와 신설로 금융소비자가 절차적 불편을 겪고,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비대면 채널 이용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규제 비용 일부를 전가하는 양상이 관찰됐다"고 했다. 비대면 채널은 적합성원칙이나 설명의무 규제 적용 또는 준수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금융소비자가 (비대면 채널에서) 상품 광고, 검색, 추천, 중개, 직판 간 차이를 쉽게 구별하지 못하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현장의 문제를 신속히 해소하지 못할 경우 금소법이 자칫 ‘규제를 위한 규제’로 전락해 그 취지와 효용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금소법 시행에 따른 금융사의 가이드라인 마련에 관여하고 있는 금융권의 한 인사는 "딱 봐도 불편과 비효율이 예상됨에도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규정이나 항목들이 있다"면서 "이런 경우 조금 더 유연한 해석과 재량 발휘가 가능하도록 당국이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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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당국이 현재는 금융회사들의 질의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상품판매 사례와 시장을 분석하고 개선사항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면ㆍ비대면 등) 서로 다른 판매채널 방식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되 규제 수준에서는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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