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음식 먹고 막걸리 마셔" 끊이지 않는 응급실 내 '주취자' 난동
응급의료법 개정안 시행에도 응급실 내 주취자 난동 여전
보안 인력 "과잉진압 우려에 능동적인 대응 어려워"
적극적인 법 집행 이뤄지지 않아 '상습 주취자' 생겨난다는 목소리도
전문가 "엄정한 법 집행과 중장기적 전략 필요"
[아시아경제 김초영 기자] 40대 A씨는 지난해 10월 집에서 양치질을 하던 중 피가 나오자 119구급대를 불러 병원을 찾았다. A씨는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중 "술이 깬 뒤에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병원 직원의 권유에 진료를 거부당했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막걸리와 음식을 먹으며 약 30분가량 병원 직원들을 향해 큰소리로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춘천지법은 "(범행 장소가) 보호자 대기실이라도 중대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응급실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하며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응급실 내 주취자 난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전국 모든 응급실에 24시간 전담 보안 인력이 배치되는 등 다양한 노력이 펼쳐졌지만 주취자가 응급의료를 방해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는 엄정한 법 집행과 중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응급의료 방해 사건은 총 3528건이 발생했다. 이 중 폭행 사건은 2015년 대비 2018년에는 4년간 2.9배나 늘어나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응급의료 방해 사건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폭행이 가장 많았고, 위계 및 위력, 난동, 폭언·욕설 등 순이었다.
특히 응급의료 방해자의 주취 여부를 살펴본 결과 65.5%가 주취 상태에서 응급의료 방해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급의료 방해 피해자로는 보안요원이 673건으로 가장 많았고 간호사 671건, 의사 637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응급의료 방해 행위는 긴급한 대처가 필요한 응급환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 앞서 '익산 응급실 폭행' '경북 권역응급의료센터 전공의 폭행' 등 술에 취한 환자가 응급실 의료진을 폭행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을 쏟아낸 바 있다.
당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다치게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처벌이 강화됐다.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감경을 배제하는 조항이 신설되기도 했다.
처벌 강화 등의 움직임에도 응급의료 방해 행위가 반복되는 데는 보안 인력이 능동적인 대응에 나서기 어려운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칫 과잉조치 논란이 일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과잉진압 문제로 인권위에 제소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최대한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진압해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불필요한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경찰이 주취자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보안요원은 공상(공무 중 부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경찰과 달리 부상을 입어도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해 적극적인 제압이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방해 행위가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아 주취자들이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응급의료 방해 등 관련 사고 및 고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응급의료 방해 행위로 총 893건의 신고·고소가 이뤄졌으나 실제 벌금형 이상은 27건(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893건의 신고·고소 사건 중 처벌을 받은 사람은 93명으로, 이 중 징역형을 받은 가해자는 2명, 벌금형을 받은 사람은 25명에 그쳤다. 처벌 자체를 받지 않은 가해자는 214건으로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이처럼 실제로는 적극적인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상습 주취자'가 생겨난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당시 김 의원은 "응급의료 방해 등의 행위로 인해 신고·고소된 가해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료진과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찰청은 지난 2012년부터 공공병원 응급실 안에 술 취한 사람들을 따로 분리해 관찰하고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술에 취해 의식을 잃었거나 경찰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로 통제가 어려운 사람들이 대상이다. 현재 서울 6곳(국립의료원·서울의료원·보라매병원·적십자병원·동부병원·서남병원)을 포함해 전국에 13개소가 설치돼 있으며, 지난해 기준 총 7만4410명의 시민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함께 지난해 7월부터 응급실 보안을 보다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전국 모든 응급실에 청원경찰, 경비원 등 24시간 보안을 전담하는 전문 인력이 배치됐다. 개정안에는 매년 응급의료기관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활용해 응급실과 경찰 사이 핫라인(비상연락시설)을 구축하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응급실 내 보안장비 설비 기준을 높여 위험 상황을 예방하는 내용도 담겼다.
전문가는 엄정한 법 집행과 응급실 내 폭력 대응에 대한 중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경원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한의사협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관련 조항이 없지 않고, 처벌이 가벼운 편도 아니"라며 "의료인,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응급구조사 폭력 사건에 대한 엄중한 법 적용과 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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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 교수는 "환자안전에 위해를 초래하는 응급실 폭력에 대한 중장기적 전략이 부재하다"며 "전문가 학회와 정부 부처는 응급실 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과 개선 방안, 중장기 전략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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