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꺼졌다"…홍콩 자유 언론의 종언
빈과일보 26년 만에 폐간
마지막 신문 사려는 사람들
전날 저녁부터 긴 대기 줄
"홍콩 언론자유 종언 고해"
[아시아경제 조현의 기자] "전날 저녁 10시부터 줄을 섰습니다. 친구들에게 줄 것까지 10여부를 구입할 예정입니다." 24일(현지시간) 자정을 넘긴 새벽. 홍콩의 한 가판대 앞에서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사기 위한 대기 줄 선두에 서 있던 한 시민은 이같이 밝혔다.
홍콩 시민들은 이날 폐간을 발표한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사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홍콩 곳곳의 가판대 앞에서 수 시간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우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반중 성향 신문 빈과일보는 이날 새벽 발행된 신문을 끝으로 26년 만에 폐간했다.
일부 가판대는 이날 수요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주문 부수를 늘렸다. 몽콕 지역의 한 가판대 주인은 "평소보다 많은 수준인 8000부를 주문했다"고 밝혔다. 보통 오전 1시 반께 도착하는 신문은 이날 0시 55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빈과일보 편집국에서는 마감을 마친 기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편집국에는 빈과일보의 마지막을 기록하려는 현지 언론과 외신들로 가득 찼다.
지지자들은 빈과일보 사옥에 몰려 "빈과일보, 계속해 나가라! 홍콩, 계속해 나가라!"란 구호를 외치며 플래시를 켠 휴대폰을 흔들었다. 기자들과 직원들은 이에 화답하며 마찬가지로 플래시를 켠 휴대폰을 흔들었다. 일부 직원들은 사옥 정문으로 나와 지지자들에게 마지막 신문을 무료로 나눠줬다.
이들의 모습은 빈과일보 마지막 신문의 첫 장에 담겼다. 총 20면으로 발행된 마지막 신문은 9면까지 빈과일보에 대한 최근 당국의 단속과 독자들이 전하는 아쉬움으로 채워졌다.
빈과일보는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오늘 자정 부로 작업을 중단한다"며 "24일이 마지막 지면 발간일"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날 모회사 넥스트디지털의 이사회가 "늦어도 이번 주 토요일 26일자 신문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발표한 지 1시간여 만이다. 빈과일보 경영진이 폐간 시기를 이틀 앞당긴 것은 논설위원이 이날 추가 체포되는 등 직원들의 안전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빈과일보는 1995년 6월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 창업자 지미 라이가 창간했다. 라이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에 충격을 받아 언론 사업을 시작했다. 2002년 둥젠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취임한 이후 중국과 홍콩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한 빈과일보는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 혁명과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빈과일보는 홍콩 보안법 시행 이후 당국의 본격적인 타깃이 됐다. 지난해 8월 보안법 시행 한 달여 만에 체포된 라이는 불법 집회를 조직하고 참여한 혐의로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국은 5억홍콩달러(약 727억원)에 달하는 그의 자산과 회사 자산 1800만홍콩달러(약 26억원)를 동결했다. 당국의 이 같은 압박에 빈과일보는 결국 문을 닫게 됐고 약 8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빈과일보 폐간으로 홍콩 언론 자유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SCMP는 폐간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빛이 꺼졌다(Lights out)’라는 제목을 달았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홍콩의 유일한 민주진영 신문이 문을 닫게 됐다"고 전했다. 홍콩 명보는 전날 "빈과일보가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폐간에 이르게 됐다"며 "당국이 자금줄을 끊으면서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만 대륙위원회는 "이 불행한 사건으로 홍콩 신문·출판·언론 자유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