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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한풍루·회암사지 사리탑 보물 승격

최종수정 2021.06.22 13:29 기사입력 2021.06.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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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 현판 있는 한풍루 "몇 안 되는 중층 관영 누각"
회암사지 네 번째 보물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정수"

무주 한풍루

무주 한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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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유형문화재 '무주 한풍루(茂朱 寒風樓)'와 경기 유형문화재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揚州 檜岩寺址 舍利塔)'이 보물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두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전했다.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조할 계획이다.


무주 한풍루는 조선 문신인 백호 임제(1549∼1587)가 호남의 삼한(무주 한풍루·남원 광한루·전주 한벽루) 가운데 으뜸으로 꼽은 관아 건물이다. 정면 세 칸·옆면 두 칸의 중층 누각 팔작지붕으로, 임진왜란 때 전소돼 다시 건립됐다.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묵객이 글·그림으로 풍류를 즐겨 당시 시대·문화상을 가늠할 수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15세기에 문신 성임, 유순 등이 이 건물을 보고 쓴 시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고 추정된다.

무주 한풍루

무주 한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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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한풍루는 일제 강점기에 불교 포교당과 학교로 활용되다가 일본인에게 팔렸다. 조선인에게 다시 소유권이 넘어간 뒤에는 충북 영동으로 이전되는 아픔을 겪었다. 1960년대에 무주 주민들이 복구를 추진해 197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건물 형태에선 이익공(二翼工) 양식이 발견된다. 누하층에 설치된 평주, 누하주와 누상주의 비례·흘림 수법, 대량의 항아리보 치목, 강다리가 설치된 추녀 등이 더해져 구조적 안정감과 미적 가치가 돋보인다고 평가된다.


문화재청 측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중층 관영 누각"이라며 "16~17세기 중수에서 진정성 있는 복원이 이뤄지고, 무주군민의 애환이 담겼다는 점에서 역사·건축·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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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왕사비, 무학대사탑,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에 이어 양주 회암사지의 네 번째 보물로 지정된 사리탑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발원해 건립됐다. 양호하게 보존돼 건축 형식은 물론 도상·장식문양 등 왕실 불교미술 요소들이 잘 남아 있다. 기본 구조는 팔각을 기본으로 구축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나뉜다. 팔각형 지대석(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뒤 놓는 돌) 윗면에 기단을 2층으로 구축했다. 기단석은 다른 승탑보다 높게, 갑석(뚜껑처럼 올려놓는 납작한 돌)은 두텁게 다듬었다. 문화재청 측은 "현존하는 사리탑 가운데 기단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다양한 장엄(장식)이 새겨져 있다. 용과 기린, 풀과 꽃무늬, 덩굴무늬, 팔부신중(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 등이다. 하층 기단은 물론 상층 갑석까지 꾸며졌다. 탑신부는 또 하나의 원구형 탑신 승탑을 올려놓은 형상이다. 네 단으로 구축한 기단 윗면에 낮은 팔각형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원구형 탑신, 옥개석, 보륜(탑 상부의 원형 부재)으로 이뤄진 상륜부를 구축했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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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측은 "전체적인 양식과 조영 기법, 세부 문양이 조선 전기 왕릉을 비롯한 왕실 관련 석조물과 비슷하다"며 "사리탑의 규모, 치석(돌 다듬는 일) 상태, 결구 수법 등으로 미루어 당대 최고의 석공이 설계·시공했다고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정수이자 대표작으로, 역사·학술·조형 가치가 크다"라고 밝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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