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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스기고]베트남전 상공을 장악한 ‘김치4’를 아시나요

최종수정 2021.06.19 08:00 기사입력 2021.06.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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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베트남 상공을 정찰비행 중인 해병 청룡부대 항공대 소속 L-19 관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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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항공 김재한 편집장]올해로 종전된 지 4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베트남전.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참전한 이들의 머릿속에는 당시 임무들이 어제 일처럼 여전히 생생하다. 특히 임무들 중에는 무덥고 습한 정글에서의 숨 막히는 전투가 있었는가 하면,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맹렬히 지원한 임무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항공기를 이용해 지상에 있는 아군을 화력으로 지원하는 근접항공지원이었다.


특히 베트남전 당시 해병 청룡부대 소속 항공대의 활약은 일선 지상 전투부대원들의 크나큰 힘이 됐다. 하지만 베트남전 참전 이후 해병대사령부 해체와 함께 항공대도 따라 해체되면서 그 활약상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베트남전 당시 해병 청룡부대 항공대 소속으로 항공지원임무를 수행했던 정규호 씨의 증언을 통해 당시 해병 항공대의 근접항공지원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정규호 씨는 1966년 해병대 소위로 임관해 1968년 베트남에 파병, 공중지원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해군 S-2 대잠초계기 인수요원과 해군항공단 교육대대장 등을 거쳐 1981년 해군 중령으로 전역했다.


다음은 그의 증언이다.


김치 4(Kimchi four), 월남전 당시 해병대 청룡부대 작전지역을 공중지원했던 유일한 항공기 호출부호다. 당시 베트남 호이안은 청룡부대가 담당하는 작전지역이었다. 그 옆으로 베트남군과 미 해병대가 작전지역을 담당했고, 미 해병대 전투비행단은 청룡부대를 지원했다. 우리 해병항공대는 다낭과 호이안 중간에 위치한 마블마운틴(Marble Mountain) 지역에서 미 해병항공단과 함께 청룡부대를 공중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 해병항공대의 주요 임무는 근접항공지원을 비롯해 포병 포격 유도, 미 해군 함포 유도, 부대이동 시 호위, 정보 입수, 전단 살포, 전폭기 비상탈출 시 구조요청 등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운용하는 항공기는 L-19였으며, 무장은 2.75인치 로켓 8발을 장착할 수 있었다.


임무는 조종사 1명과 관측장교 1명(한국 해병대 포병장교 또는 미 해병대 앵그리코 장교) 등 2명이 탑승했다. 미 해병대 앵그리코(ANGLICO, Air Naval Gunfire Liaison Companies)는 항공함포연락중대로 항공, 지상포격, 함포 등을 유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였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날은 정보 입수와 근접항공지원 임무가 계획돼 있었다. 함께 임무를 수행할 장교는 미 해병대 앵그리코의 빌리 죠 중위가 탑승하기로 돼 있었다. 빌리 죠는 하와이 출신으로 체격이 나보다 작았지만, 전쟁 중인데도 웃음이 많았고 명랑했으며, 술과 담배는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비행에 앞서 우리는 방탄조끼와 헬멧, 권총, 대검, 소량의 수류탄과 비상식량 등을 챙겼다. 그리고 선임장교에게 보고한 후, 정보장교로부터 비행 전 정보브리핑을 보고받고 항공기로 향했다. 항공기에 도착하면 우선 기체 이상 유무와 무장장착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특히 조종사는 지난 임무에서 실탄이 얼마나 스쳤는지, 연료누출은 없는지 등 항공기 외부상태를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기체 상태를 확인한 후 나는 시동을, 후방석 빌리 죠는 통신상태를 체크했다. 이상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 작전지역으로 향했다.


‘오늘도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를…’


일단 임무에 나서면 고국에 계시는 부모나 친구 생각은 사라진다. 오직 밀림지역을 향해 동공을 최대로 확대하고, 지상의 표적을 끊임없이 노려보며 뇌에 집어넣어야 했다. 그나마 그날은 미 해군의 함포사격이나 포사격 유도임무도 없는 날이어서 부담이 덜했다. 그런데 순간, 흐릿한 안개 속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나와 빌리 죠의 시선은 곧바로 수상한 움직임을 쫓았다.


“빌리 죠! 너, 보고 있어?”

“물론이지!”


나와 빌리 죠는 이미 한 몸이었다. 우리는 목표물을 계속 주시하면서 고도를 높이고 거리를 넓혔다.


‘지상의 아군이든 적군이든, 우리를 보고 준비하리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우리는 즉시 적군지역인지, 아군의 작전상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보를 분석하는 본부상황실에 보고하고, 수상한 움직임을 더욱 매섭게 노려보았다. 잠시 뒤 상황실에서 그 움직임의 실체가 적이라고 알려왔다. 특히 작전하는 청룡부대가 그곳에서 500미터 뒤에 있고, 우리가 발견한 지점이 청룡부대의 최종 목적지라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헬기로 이동해 며칠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상황실에서 덧붙였다. 적군은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우리 임무는 그 지점에 잠복해 있는 적들을 신속하게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청룡부대를 위한 것이고, 나와 빌리 죠의 임무이자 마음이었다.


“빌리죠! 몇 명으로 추정해?”

“한 30명 정도?” 빌리 죠가 대답했다.

“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았는데 40명 정도?”

“다낭 데스크 연락해, 그리고 미 해병대 전투기도 불러!”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청룡대원들이 표적에서 너무 가까이 있었다. 거리를 더 두지 않으면 오폭으로 우리 청룡대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즉시 상황실에 연락해 청룡대원들을 현재 위치에서 300미터 후퇴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대대장이 정보사항에는 그 지점에 적이 없단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보를 믿지 않는다, 적들도 우리도 수시로 바뀌는 것이 전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작전지역은 40도의 더위와 습기로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방탄조끼에 헬멧을 쓰고 무거운 총과 실탄, 수류탄, 대검 등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나 역시 지상의 청룡대원들이 겪고 있을 고단함을 절대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목숨이 달린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뒤로 빼라고 하면 빼지 웬 말이 많으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대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자 급기야 말싸움으로까지 번졌다. 거친 대화가 오가면서도 나는 대대장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여단 상황실에서 우리를 호출했다. 여단장이 조종사가 정확하다면 부대를 뒤로 빼고 근접항공지원을 정확히 수행하라고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이다.


‘김치 4가 이겼다!’


이제 부대 위치를 이동시키면 전폭기들이 그 지역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었다. 수십 분이 흘렀을까? 근접해 있던 소대가 지시대로 이동을 완료했다고 알려왔다. ‘이제 적을 제압하는 임무는 내게 달려있다’ 빌리 죠에게 전투기 위치를 확인해 보라고 하니, 벌써 우리 상공에서 1만 피트 위에서 대기 중이란다. 그와 동시에 미 해병대 전폭기들이 우리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치 4, 김치 4”

‘이제 교신이 됐으니 적지에 폭탄만 투하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 돌아갈 수 있다. 꼭 그렇게 되기를?’


우리의 요청을 받고 출격한 기종은 미 해병대의 F-4 팬텀이었다. 네이팜 2발과 500파운드 폭탄 4발.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후방석의 빌리 죠가 아주 자세하고 침착하게 3,000피트 상공에 있는 우리의 위치와 공격방향도 알렸다. 그리고 우리는 표적을 향해 로켓도 발사했다. 로켓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속도를 올리자 우리는 급선회를 하면서 로켓을 계속 주시했다.


“명중이다!”


하얀 연기가 표적을 뒤덮었다. 빌리 죠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명중이라고 외쳤다. 우리는 상황을 팬텀기에 통보한 후 왼쪽으로 선회하면서 표적의 행동을 계속 감시했다. 그 사이 2대의 팬텀기 중 1번기가 급강하를 시작해 4,000피트 상공에서 네이팜 2발을 투하한 후 최대 파워로 급상승했다. 지상에 떨어진 네이팜탄은 3천 도가 넘는 시뻘건 불덩어리와 함께 시커먼 화염을 만들어내며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정확한 위치에 떨어졌다. 명중이다.’


이어 2번기도 네이팜 2발을 투하했고, 다시 1번기가 500파운드 폭탄 2발을 동시에 투하해 표적에 명중시켰다. 그와 함께 2번기가 투하한 폭탄 2발도 폭발하면서 폭음과 불꽃이 내가 탑승한 항공기 가까이 올라왔다.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움직이는 적의 위치를 시계방향과 거리로 지시하면 팬텀기가 곧바로 기총사격을 실시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가 정보를 제공하면 팬텀기는 공격을 퍼부었다.


‘대성공이다’


공격이 끝난 후 미 해병대 조종사들이 전과를 묻자, 빌리 죠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금방 의미를 알아차리고 100% 주라고 했다. 이에 신이 난 빌리 죠가 “Yes Sir! 100 over 100(200%)”라고 답했다. 팬텀 조종사들도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고는 빠른 속도로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어느새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조금씩 사라지면서 금방 조용해졌다. 우리 청룡대원들을 노리고 잠복해 있던 적들은 분명 포탄과 기총에 전투의지를 상실했을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성이 오갔지만, 다행히 하늘과 땅에서 우리는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 청룡대원들도 이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대원도 희생 없이 땀과 화약연기를 바다에 담그고 고향을 생각할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작전지역을 벗어나 남중국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헬멧을 쓴 얼굴은 검은 얼룩으로 덮여 있었고, 화약냄새도 여전히 따라다녔다. 임무 대부분을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다보니 늘 있는 일이었다.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우리 해병항공대는 언제쯤 제트기를 타고 임무하는 날이 올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다’


잠시 후 나와 빌리 죠는 2시간 이상의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복귀했다.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나와 빌리 죠의 근접항공 요청으로 당시 현장에 있던 부대는 아무런 인명피해 없이 다수의 무기와 장비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청룡부대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그 후 월남 참전 근무일이 지나고 귀국명령이 떨어졌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귀국일이 이보다 더 좋겠는가? 1969년 12월, 나는 월남 참전 훈장을 받고 1년 4개월 만에 귀국선 계단에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발걸음과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간다는 생각에, 눈물이 땀과 함께 주르르 흘러내렸다. 귀국선은 마침내 다낭 부두를 힘차게 밀어내며 그리운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남중국해 귀국선에서 혼수상태처럼 침대에 누워 고향을 그렸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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