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병원 건립 vs 장애인 학교설립
부지개발 놓고 고성 오가는 주민토론
차별과 혐오의 농도를 경험할 무대

연극 '생활풍경' 공연장면(사진제공=극단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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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한방병원 건립에 찬성하면 가 구역,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옹호하면 나 구역에 앉아주세요."


극단 신세계의 연극 ‘생활풍경’에는 지정 좌석이 없다. 관객이 가상의 행정구역인 한강시 수리구 내 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어떤 시설을 만드는 게 합당한지 판단한 뒤 고르면 된다. 무대는 전형적인 주민토론회장으로 꾸며져 있다. 가운데 사회자·국회의원·공무원이 배석하고 양측엔 각자 입장을 전할 시민단체와 주민 대표가 앉아 있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토론장은 고성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토론자로 나선 주민들은 좀처럼 패널석에 앉아 있질 않는다. 서로 되받아치는 말이 단 1초의 끊어짐도 없이 빠르게 오간다. 객석 곳곳에도 상대 발언을 비아냥대거나 막무가내로 소리지르는 주민들이 있다. 관객은 순간 깨닫는다. ‘아, 공연장이 아니라 진짜 막장 토론회장이구나.’


사방에서 몰아치는 고성 폭격과 육탄전은 10여분간 계속된다. 순간 배우들이 모두 정지하고 암전. 1막이 끝났다. ‘생활풍경’은 총 120분 공연에서 1막 10분, 인터미션 10분, 2막 100분으로 구성 방식이 독특하다. 1막은 일종의 맛보기다. 수리구 밖에 거주하는 구경꾼 입장에서 우연히 토론장을 목격한다는 설정이다.

연극 '생활풍경' 공연장면(사진제공=극단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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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간의 인터미션에서 관객들은 본격적으로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수리구 주민이 된다. 반대로 놓여 있던 현수막과 의자가 관객을 향해 배치되고 배우들은 관객을 주민처럼 대한다. 특수학교 측은 전단지를 관객들에게 일일이 건내며 "00 엄마 바쁘다더니 오셨네"라는 식으로 알은척한다. 한방병원 측은 그들만의 응원구호까지 만들어 일심동체를 유도한다.


이처럼 ‘생활풍경’은 제3자가 아닌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됐을 때 우리는 장애인을, 나아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묻는다. 2017년 서울시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실화에 기반했다. 지난해 동양예술극장에서 초연됐고 올해 제42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특수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측은 대다수가 장애인 자녀의 부모다. 이들은 폐교 부지가 학교 용지이기 때문에 특수학교를 짓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현행 특수학교 학생 수용 인원이 턱없이 모자라니 자녀들의 학습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한방병원 측은 수리구에 기초생활수급 고령자나 경제 최약층이 가장 많으니 의료복지 차원에서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수학교는 소수만 혜택을 보지만 한방병원의 경우 구민 전체에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주변의 의료관광특구와 연계하면 부동산 값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 역시 숨기지 않는다.


연극 '생활풍경' 공연장면(사진제공=극단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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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풍경’은 장애인이 ‘선’ 비장애인이 ‘악’이라는 ‘언더도그마’식의 이분법을 피한다. 특수학교 찬성론자들의 이기적 행동들도 그대로 드러낸다. 불의는 참지만 불이익은 절대 참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만 극사실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혐오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되묻게 만든다.


2막 중간, 패널 위치가 바뀌면서 관객들은 자신들이 택했던 입장의 반대편에 서보는 경험을 한다. 극중 "이해와 공감이 없는 대화는 허공의 메아리"라는 대사가 있다. 이처럼 자기가 바라본 풍경만 고집할 게 아니라 상대의 시선도 존중해보자는 것이다. 극중 한 장면도 다수 장애인이 소수 비장애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상황으로 전복된다. 문제의 행동을 따라함으로써 당사자가 잘못에 대해 자각하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미러링’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뒤집기보다 다수와 소수를 뒤집어 힘의 논리에 따른 차별과 혐오의 농도도 경험해보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차별과 혐오는 성소수자나 장애인, 여성 등의 이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수와 소수가 대립하는 상황 어디에나 나타나는 문제다.


갈등을 적극 해결해야 할 주체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수리구 국회의원은 토론 초반 모두발언만 한 뒤 자리를 뜬다. 사실 한방병원 건립안은 그가 가장 먼저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갈등의 원인 제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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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부재 속에 영혼 없는 표정으로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교육청 공무원. 이들의 무관심 속에 갈수록 격해지는 수리구 주민들. 우리의 혐오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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