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첫 정상회담을 치렀다.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한미동맹은 흔들림 없었으며, 경제협력과 반도체 및 기후변화 등에 대한 파트너십도 재확인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군에 백신을 직접 지원하고, 양국이 포괄적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게다가 1979년 이후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제한했던 ‘한미 미사일 지침’이 공식 폐기됐다. 군사주권의 영역을 더 확장했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대북정책을 비롯한 안보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전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 및 남북 대화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확인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치 보란 듯 북핵문제를 총괄하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로 협상파인 성 김 동아태차관보 대행을 임명했다. 성 김 대표는 북핵 협상 과정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로드맵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에겐 신뢰를, 북한 김정은 총비서에겐 그간의 노력에 대한 존중을 전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문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북핵문제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그 때문에 민생이 뒤로 밀리고, 부동산 정책 등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미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것은 성과이며 또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딱히 손에 잡히는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남·북·미 모두 과거로 되돌아간 분위기다. 그동안 공들였던 승부수가 결국 ‘대북정책 실패’로 남는다면,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통한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반전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북핵문제를 타결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길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것만 이뤄낸다면 임기 말 레임덕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미 내치의 많은 부분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여당에 넘긴 상태다.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접종 상황도 나쁘지 않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통한의 대업인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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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에게 북핵문제는 건곤일척의 마지막 승부수가 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미 힘을 실어 줬다. 북한도 임기를 1년여 앞둔 문 대통령을 향해 그냥 막말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남·북·미 모두에 앞으로의 1년은 최후의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일이 제대로 성사된다면 북핵 협상의 파장은 국내 정치 전체를 쥐락펴락할 것이다. 차기 대선 일정은 그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물론 과잉해석은 금물이다. 북한이 화답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날 뿐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인 셈이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엄청난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속으로 웃는 더불어민주당, 또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는 국민의힘, 두 정당의 표정이 묘하게 교차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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