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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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0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서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에 39.1%만 동의해 2017년 조사(51%) 대비 11.9%포인트 급감했다. 반면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60.3%로 3년새 14.2% 급증했다. 살인적인 취업난과 급등하는 부동산가격, 남녀 성별 인식격차가 커 결혼이나 출산에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청춘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짧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도산법 분야의 전문가 엘리자베스 워런과 그의 딸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는 2003년 ‘맞벌이의 함정-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을 출간했다. 저자들은 당시 미국의 맞벌이 중산층 가정은 한 세대 전인 1970년대에 혼자 벌던 중산층 가정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재정적인 안정성은 훨씬 떨어져서 수많은 가정들이 파산하거나 파산위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워런 모녀의 분석은 이렇다. 파산한 가정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부부 양쪽이 다 직장에 다니는 가정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부부가 모두 돈을 버는 가정이 한 사람이 버는 가정보다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수입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결과는 정 반대로 나왔다. 전업주부는 가정에 위기가 닥칠 때 안전망의 역할을 했다. 맞벌이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엄마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수입이 늘고 그에 따라 소비수준도 높아진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면 재정은 급격하게 악화된다. 아빠 혼자 돈을 벌 때는 아빠가 해고되면 엄마는 아빠가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직장에 나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맞벌이가 되면서 아빠가 해고돼도 이전의 아빠 소득을 대체할 방법이 없다. 이혼을 할 경우에도 엄마가 전업주부였다면 취직해 새로운 소득을 벌어와 자녀를 부양할 수 있다. 하지만 맞벌이라면 이전보다 사정이 좋아질 수 없다.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병에 걸리면 한 사람의 수입은 순간 사라진다. 그렇다면 중산층 부부가 맞벌이로 번 돈은 어디로 갔는가. 그 돈은 집값으로, 교육비로, 의료비로 쓰였다.


파산한 가정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자녀가 있는 부모라는 것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녀가 있는 기혼 부부가 자녀가 없는 기혼 부부보다 두 배 이상 파산신청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이를 키우는 이혼 여성은 자녀를 가진 적이 없는 독신 여성보다 거의 세 배나 더 파산신청을 하기 쉽다고 한다.

20년 전 미국 사회를 분석한 내용이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에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점이 많다. 최근 신한은행이 발간한 ‘2021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를 둔 40대와 50대 가구는 한 달 전체 소비의 4분의 1이 넘는 돈을 교육비에 쓴다. 다음은 식비와 주거비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주거비 부담이 늘고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것은 명확하다. 결혼과 출산이 젊은 청춘들의 파산에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 극심한 취업난, 가상화폐의 광풍을 보면서 20년 전 미국사회의 현상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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