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웹사이트 등 '사적 응징' 콘텐츠 인기
피의자 편지 공개하거나 '신상 박제' 사이트 설립
"순기능 있다" vs "마녀사냥 불과" 시민들 의견 분분
전문가 "사법부 불신 팽배해졌기 때문…신뢰 복원해야"

한 유튜버가 지난 9일 스트리밍 생방송을 통해 공개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 피의자 장모(35) 씨의 '옥중 편지' 일부 내용. / 사진=유튜브 캡처

한 유튜버가 지난 9일 스트리밍 생방송을 통해 공개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 피의자 장모(35) 씨의 '옥중 편지' 일부 내용. / 사진=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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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큰일 해내신 겁니다.", "딸을 죽여놓고 반성 한 마디 없네. 정말 소름 끼친다.", "저런 싸이코는 응징 가야죠."


지난 9일, 유튜버 A 씨는 생후 16개월 된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 장모(35) 씨가 남편에게 보낸 '옥중 편지'를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에서 공개했다. 누리꾼들은 반성하는 모습 없이 친딸의 영어 교육, 남편에 대한 애정 표현 등이 담긴 편지 내용에 공분을 터뜨리며 이를 공개한 유튜버에 찬사를 보냈다.

공권력을 대신해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누리꾼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규탄 받은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거나 몰래 뒤쫓는 등, 이른바 '복수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굼뜨고 무기력한 수사당국 대신 직접적인 응징을 가할 수 있는 누리꾼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고 옹호하는 반면, 사법부의 영역인 형사 재판을 일반 시민이 대리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장 씨의 '옥중 편지'를 공개한 A 씨는 하루 뒤인 지난 10일, 장 씨 측으로부터 건조물 침입, 비밀 침해 등 혐의로 피소됐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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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앞서 지난 7일 정인 양 양조부가 있는 경북 안동시 한 교회 우편함에서 장 씨가 보낸 편지를 꺼내 촬영한 뒤 다시 넣어둔 혐의를 받는다. A 씨는 이틀 뒤인 지난 9일 실시간 방송에서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제가 처벌을 달게 받겠다"며 불법을 시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누리꾼들이 불법도 마다하고 사적 응징의 대리자로 나선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68)이 만기출소 하던 당시 일부 유튜버들이 호송차량을 파손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피의자의 신상을 일일이 조사해 온라인 공간에 공개하는 이른바 '신상박제' 웹사이트가 설립되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해 만들어진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사진·집 주소·직장명·전화번호 등 개인 신상정보를 사이트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디지털 교도소에서 성범죄자로 몰린 한 대학생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같은해 8월에는 성범죄자와 전혀 관련 없는 동명이인의 정보를 등록했다가 삭제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결국 폐쇄됐다.


'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소개란. / 사진=디지털 교도소 캡처

'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 소개란. / 사진=디지털 교도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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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 가운데 '디지털 사적 응징'을 두고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흉악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같은 누리꾼들의 응징은 '필요악'이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형사 처벌에 일반 시민이 개입하는 것은 더 큰 혼란과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20대 회사원 A 씨는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만 봐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불만도 한계에 이른 게 아닌가"라며 "애초에 국가가 제대로 수사를 하고 합당한 처벌을 내렸다면 사적 응징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B(25) 씨는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풀려났을 때 그를 조롱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통쾌했던 기억이 있다"라며 "부작용이 당연히 있고 그걸 경계하는 것도 맞지만, 이런 유튜버들에게도 순기능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적 응징은 오히려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뿐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직장인 C(32) 씨는 "일반인들이 나서서 범죄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응징하는 것은 최대한 좋게 봐줘도 마녀사냥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디지털 교도소 건도 그렇고 얼마나 엉터리 정보들이 많았나. 내 가족이나 친구가 그런 응징의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사회에 만연한 사법부 불신이 사적 응징 디지털 콘텐츠의 수요를 키웠다며, 장기적으로 사법부가 국민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과거 'n번방 사건'부터 조두순 출소 논란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 형사 사건에서는 피해자 보호에 다소 미흡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보니 국민의 사법부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이라며 "최근 나타나는 사적 응징 유튜버들은 이같은 국민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충족시켜 주면서 급격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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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사법부와 절차에 대한 불신은 쉽게 악화되지만, 신뢰를 다시 복원하는 일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사법부와 수사당국은 피해자 보호에 더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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