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인간과 AI로봇, 첨단기술시대의 사랑과 우정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인간과 기계의 공존과 대립을 그린 공상과학(SF) 영화 중 고전으로 꼽히는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했다. 내용이 동시대 사람들의 관심과 동떨어져 너무 앞서간 탓이다.
‘매트릭스’는 인간과 기계 담론을 다룬 SF 영화 가운데 흥행에 가장 성공했다. 올해 연말 네 번째 시리즈 개봉이 예정돼 있을 정도다. ‘매트릭스’ 첫 번째 시리즈가 개봉한 1999년 당시 기술발전이 가져올 인간의 미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무척 컸다. 세기말적 두려움 때문이었다.
21세기 들어 인공지능(AI)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각 산업과 노동현장에서 프로그램이나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경우는 차츰 많아졌다. 간단한 청소부터 최첨단 수술까지 로봇이 도맡는다. 언론만 해도 로봇 기자와 AI 앵커가 뉴스를 보도한다. 이제 AI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에 굳이 SF를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다.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과 기계는 서로 보완하는 존재로 살아갈까.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지성·감성·외모 등에서 인간과 큰 차이가 없는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4년 만에 출간한 신작이다. 성장통을 겪는 10대 소녀 조시와 ‘AF(Artificial Friend)’로 불리는 AI 로봇 클라라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배경은 미국의 한 소도시다. 이곳에서는 AI 기술의 발달로 버전 업그레이드된 AF가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유전공학 기술도 뛰어나 인간 지능 역시 유전적으로 향상되도록 조작이 가능하다. 작가는 자아가 있는 AI 로봇의 인간화와 그 한계, AI 로봇처럼 뛰어난 지능이 갖고 싶은 인간의 기계화 욕망 등을 클라라의 시선으로 담담히 보여준다.
클라라는 AF 매장 쇼윈도에서 바깥 세상 구경하길 좋아한다. 도로 위의 차들이나 인도 위의 사람들, 각종 사물들과 태양의 움직임 등을 보며 혼자 사색하길 좋아한다. 인간의 생각을 읽거나 사건을 보고 추론하는 능력이 다른 AF보다 뛰어나다. 조시는 그런 클라라에게 호감을 갖고 엄마에게 졸라 집으로 데려온다.
조시에 대한 클라라의 사랑은 순수 그 자체로 아가페적이기까지 하다. 조시는 유전자 조작 부작용으로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 클라라는 전능하다고 믿는 태양에게 조시를 낫게 해달라고 빈다. 그러나 태양은 클라라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자 클라라는 자기의 성능 저하도 무릅쓰고 독한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한 건설현장의 로봇을 파괴하기까지 한다. 태양이 기특하게 여겨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클라라의 절대목표는 조시가 건강을 되찾아 남자친구 릭과 행복한 삶도 살게 만드는 것이다. 독자는 클라라가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돼 있기 때문임을 잘 안다. 하지만 클라라는 이게 인간들이 가진 사랑의 감정이겠거니 추론할 뿐이다.
반면 인간의 모습은 냉정하고 이기적이다. 조시도 클라라를 아낀다. 하지만 그의 감정이나 건강 상태, 주변 관계에 따라 애정의 밀도가 바뀐다. 조시가 마침내 건강을 되찾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떠날 때 클라라와 작별하는 모습에서 잔인함마저 느껴진다. 다 커버린 소녀가 이제 유치해진 장난감을 창고 구석에 처박아 놓듯 조시는 그렇게 클라라와 헤어진다.
조시의 엄마가 클라라를 데려오는 데 동의한 것도 사실 조시가 죽으면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엄마는 클라라에게 조시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도록 부추긴다. 조시의 외모를 그대로 본뜬 형상까지 만들어 입히려는 계획도 짠다. 클라라는 조시를 완벽하게 모방해도 자기에 대한 인간의 ‘시선’으로 인해 진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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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 폐기물들이 잔뜩 쌓인 야적장에서 최후를 맞는 클라라. 그러나 클라라는 행복하다. "조시가 행복하게 돼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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