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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문이 열렸다"…가해자가 된 피해자 [보이스피싱 대해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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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어야했던 대학생, 中서 폭행·강요에 사기가담
만신창이로 귀국, 협박에 신고도 못해

‘남의 일’로만 치부됐던 보이스피싱. 어눌한 조선족 말투에 속는 사람이 바보라는 비아냥도 옛말이다. 해외에 거점을 두고 점점 더 치밀해져가는 보이스피싱은 적발도, 피해 보상도 쉽지 않다. 절대 안 당할 자신이 있었기에,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큰 정신적·경제적 고통에 시달린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돼버린 보이스피싱의 실태와 예방책을 3회에 걸쳐 모색해본다.<편집자주>

"지옥문이 열렸다"…가해자가 된 피해자 [보이스피싱 대해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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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유병돈 기자] "그 날부터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20대 중반의 안재겸(가명)씨는 인터뷰 내내 주변을 돌아보며 불안해 했다. 보이스피싱 사무실에서 잠시 일을 했던 안씨는 지금도 악몽에서 살고 있다. 부정하게 돈을 벌 생각도, 실제로 손에 쥔 돈도 없었던 안씨에게 그 몇 개월 간은 잊어버리고 싶은 암흑기일 뿐이다.

안씨가 보이스피싱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것은 타의였다. 친한 형이 지방의 공장에서 생산직 교대 근무를 하자고 제안을 했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돈을 벌어야 했던 대학생 안씨는 곧장 휴학계를 냈다. 그러자 회사 측에서는 파견 근무라는 명목으로 안씨와 형을 중국으로 보냈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이라는 당근과 함께였다.


중국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을 기다린 것은 무차별적인 폭행이었다. 숙소로 알고 찾은 곳은 보이스피싱 일당의 사무실이었고, 안씨 일행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뒤 감금됐다. 그리곤 협박에 못 이겨 보이스피싱 전화 통화 업무를 해야만 했다.


외출은 철저히 통제됐고, 보이스피싱 일당이 주는 매뉴얼에 따라 전화 통화를 해야 했다. 실적이 없는, 즉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만들지 못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폭행과 욕설이 돌아왔다. 이렇게 하루 14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고 안씨가 받은 돈은 월 400만원 남짓. 하지만 이마저도 숙박비와 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100만원을 겨우 넘겼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안씨는 탈출을 감행했다. 3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면서 발을 헛딛는 바람에 발목을 다쳤다. 안씨는 "그 곳에서 실적이 없다고 맞아죽으나 탈출하다 걸려서 맞아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면서 "감시가 느슨해지는 새벽 시간에 창문을 뜯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모아둔 돈과 짐을 모두 포기했다. 도망을 쳤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살 돈조차 없었다. 결국 한국 집으로 전화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악몽은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그 날부터 집으로는 안씨를 찾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안씨의 가족이 전화를 받으면 안씨의 친구, 친한 형이라며 안씨가 집에 있는지, 한국으로 들어왔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안씨는 집 밖으로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었다.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일당들을 체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안씨 자신도 자의든 타의든 보이스피싱에 가담을 했기 때문이다. 안씨는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가 나만 범죄자로 처벌받을 것 같아 겁이 났다"고 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걸려오던 전화는 안씨 가족이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뜸해졌지만, 안씨의 악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안씨는 "비록 협박에 못 이겨 한 행동이긴 하지만, 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면서 "수년이 지났지만, 그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죄송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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