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위원장 "가상화폐 함부로 뛰어드는 것 올바른 길 아냐"
"꼰대식 발언", "내로남불" 청년들 분노
"韓 청년들 이 길로 내몬 게 누구냐" 靑 청원 동의 14만건 근접
청년실업률 10%, 구직포기인구 240만명
가상화폐 등 '일확천금'으로 눈 돌려…'계층 사다리' 박탈 불안감

은성수 금융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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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2030 청년층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앞서 은 위원장이 가상화폐 투자자에 대해 '정부가 보호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두고 "기성 세대가 청년층의 투자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동산·주식 등 기존 금융 투자와는 달리 2030 청년층이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가상화폐를 투기수단 취급하는 것은 '꼰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논란이 2030 세대와 4050 세대 간 균열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야" 2030 분노 불 지른 은 위원장 발언


청년층의 '집단 반발'은 은 위원장의 지난 22일 발언에서 촉발됐다. 은 위원장은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가상화폐 열풍에 따른 투자자 보호 대책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현재 운영 중인) 가상화폐 거래소가 오는 9월 모두 갑자기 폐쇄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은 위원장은 "현재 200개가 넘는 암호화폐 거래소 가운데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이용 및 보고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록이 완료된 곳은 단 하나도 없다"라며 "만약 등록이 안된다면 9월에 가서 갑자기 폐쇄될 수 있으니, 일주일에 한번씩 언론 등을 통해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전 7시 54분께 5천790만원까지 떨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전 7시 54분께 5천790만원까지 떨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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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위원장은 가상화폐 투자자를 엄밀히 '투자자'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투자자'라고 표현한다면 당연히 '보호'라는 개념도 뒤따라나온다"라며 "가상화폐는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에 따라 발행되는 유가증권이 아니고, 실체 자체도 모호해서 이런 자산에 들어갔다고 다 정부가 보호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행법에 규정된 금융 자산이 아니므로 가상화폐 투자자는 피해를 입어도 정부의 보호를 받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하루에 20%씩 오르내리는 자산에 함부로 뛰어드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 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어른들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 불려" 靑 청원


은 위원장의 이같은 언급에 일부 청년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자신들의 투자 수단인 가상화폐를 투기 수단으로 업신 여긴데다, '잘못된 길'이라며 훈계하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것이다.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하루 뒤인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은 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은 위원장을 겨냥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줘야 한다고 하셨죠?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되었을까"라며 "지금의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라"라고 규탄했다.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쓴 글에서 은 위원장을 향해 "지금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라"고 비판했다. / 사진=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쓴 글에서 은 위원장을 향해 "지금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라"고 비판했다. / 사진=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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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사회생활을 하며 여태까지 어른에게 배운 것을 한번 생각해 봤다. 제가 4050 인생 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바로 내로남불"이라며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치려는 태도로 나오는 것이 한국을 망친 어른들의 공통점"이라고 질타했다.


청원인은 은 위원장을 포함한 기성 세대가 과거 부동산 붐을 타고 수월하게 자산을 축적했다면서 "그들은 (부동산으로) 쉽사리 돈을 불렸지만, 이제는 (가상화폐가) 투기라며 2030에겐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들을 쏟아낸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불려놓고는 가상화폐는 투기니 그만 둬야 한다. 국민의 생존이 달려있는 주택은 투기 대상으로 괜찮고 코인은 투기로 부적절한가"라고 되물으며 "역시 어른답게 배울게 많다"고 비꼬아 비판했다. 이 청원은 27일 오후 기준 동의 건수가 14만건에 근접한 상황이다.


청년들 분노 이면엔 '계층 사다리' 박탈 불안감


현재 가상화폐 시장에 유입되는 신규 투자자 대부분은 2030 세대다. 지난 1분기(1~3월) 국내 4대 가상화폐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투자자 현황을 보면, 신규 실명 계좌 설립자 249만5289명 중 20대와 30대 비중은 각각 32.7%(81만6039명), 30.8%(76만8775명)로 나타났다. 신규 가상화폐 투자자 10명 중 6명은 2030 세대인 셈이다.


가상화폐는 가격등락폭이 큰 고위험 자산으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청년층이 가상화폐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계층 사다리'에 올라 탈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청년실업률(지난달 기준)은 10%를 기록했다. 또 아예 구직 의지를 잃고 쉰 인구를 뜻하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전년 대비 3% 증가한 243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고용 시장에서 청년층이 큰 타격을 입고 있고,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도 옅어지고 있는 셈이다. 청년들이 노동소득을 통해 부를 축적하기 보다, 비트코인 등 '일확천금' 기회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은 위원장의 "잘못된 길" 발언은 억눌려 있던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는 일부 청년들은 불쾌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약 2년 전부터 비트코인·리플 등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다는 A(29) 씨는 "나도 무턱대고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투자 조언을 줄 때도 항상 신중을 기울이는 편이다"라면서도 "'올바른 길', '잘못된 길' 운운은 고위 공무원으로서도 어른으로서도 성급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게 '꼰대'가 아니면 뭐겠나"라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이 있다는 30대 직장인 B 씨는 "가상화폐가 투기나 다름 없다고 하는데 그럼 부동산 투기로 손쉽게 벌어 온 정부·여당 인사들, 공무원들은 대체 뭐였나"라며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토로했다.


구인 정보를 바라보고 있는 한 여성. / 사진=연합뉴스

구인 정보를 바라보고 있는 한 여성.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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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 여야는 고위험 투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며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및 법제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 회의에서 했던 발언에 유감을 표한다. 경솔한 발언에 상처받은 청년들에게 죄송의 말씀을 올린다"라며 "(은 위원장 발언은) 기성세대 잣대로 청년들의 의사 결정을 비하하는 명백한 꼰대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청년들이 주식, 코인 등 금융시장에 뛰어드는지 이해했다면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영환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26일 당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은 2030 청년을 포함해 많은 국민들이 왜 가상자산에 투자하게 됐는지 깊이 이해하겠다"라며 "거래소 폐쇄같은 경고성 메시지로 투자자 불안을 가중하는 것보다 가상자산의 투명성과 거래 안정성을 확보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재산 은닉이나 가격 조작 등의 불법 행위 차단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가상화폐 투자 법제화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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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를 설립,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관련 제도 등 마련 방안을 연구하겠다며 "암호화폐 소득에 로또 당첨금 수준으로 과세하고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엄포만 놓을 게 아니라, 암호화폐를 제도화할 것인지,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전문가들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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