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19세기 준공 직후부터 국제물류의 대동맥이라 불려온 이집트 수에즈운하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의 운명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당시 러시아 해군함대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바람에 운항거리가 9500㎞ 늘어나면서 유리한 전황을 놓쳐버렸고, 끝내 일본함대에 참패하고 만 것이다.


당시 러시아함대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1902년 영일동맹에 따른 영국의 수에즈운하 봉쇄 때문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러시아 주력 전함들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배가 너무 커서 운하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형함선들은 모두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마다가스카르섬에서 전함들을 기다렸다가 합류했다.

당시 가장 큰 전함이라 해도 현재 컨테이너선들의 5분의 1 크기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수에즈운하도 지금보다 훨씬 좁았기 때문에 러일전쟁의 승패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됐다. 이는 수에즈운하가 착공 당시부터 심각한 공사비 부족으로 계획보다 운하 폭이 크게 축소된 탓이었다.


1859년 수에즈운하 착공 당시 이집트 정부는 시공을 맡은 프랑스 측에 재정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보다는 주로 유럽 내부 문제에 집중하던 프랑스의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운하의 공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40만주의 증권을 발행했으나 17만주나 팔리지 않았고, 공사자금 절반가량을 뒤집어쓰게 되면서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영국은 다른나라들이 주식을 매입치 못하게 압력을 가해 주식가격을 계속 떨어뜨렸다. 이후 1875년 이집트 정부가 재정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운하 지분을 싼값에 내놓자, 영국은 곧바로 지분을 사들여 운하 운영권을 장악했다. 영국은 아시아 식민지 사업을 위해 운하의 확장을 계획했지만 뒤이은 1차, 2차대전이 발목을 잡았다. 2차대전 이후에도 중동전쟁으로 정정불안이 지속되면서 운하의 확장공사는 늘 해운업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번에 일어난 22만t급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좌초 사고도 예고돼온 일이다. 2010년대 이후 컨테이너선과 유조선들은 기술 개발과 함께 획기적으로 규모가 커졌지만 2015년 확장공사를 했다는 수에즈운하는 이집트의 재정난과 함께 제대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AD

이번 사고로 러시아와 캐나다는 여름철 빙하가 완전히 사라진 북극항로를 이용하라고 각국 해운사들을 유혹 중이다. 수에즈운하가 이번 사고로 전 세계 물류 대동맥이자 국제 군사안보의 핵심 자리를 내놓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