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한국판 연방수사국(FBI)으로 불리는 '국가수가본부(국수본)'의 초대 수장에 결국 현직 경찰관이자 친정부 인사가 임명됐다. 외부에서 발탁해 국수본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겠다며 2개월 넘게 공모 절차를 거쳤으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올해 초부터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됐다. 검사의 지휘 없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은 경찰 내에서 수사를 끝낼 수 있다. 막강한 수사 권력을 손에 쥔 것이다. 경찰 수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수본 탄생의 배경이다. 경찰내 수사 업무와 관련된 인력 약 3만명이 국수본의 지휘를 받는다. 조만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 받고, 안보수사 전담조직도 국수본에 흡수된다. 말 그대로 매머드급 조직이다.

이 때문에 국수본의 초대 수장이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수사 공정성과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 등이 요구되는 자리인 만큼 경찰 내부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외부 인사가 발탁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물론 전문성을 갖춘 경찰 내부 인물이 맡아도 되지만, 청탁이나 민원이 끊이지 않는 수사 특성상 '제식구 감싸기'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외부인 발탁으로 방침을 정하고 작년 말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전직 판사, 변호사 등 5명이 지원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경찰청은 지원자 명단에 없던 남구준 당시 경남경찰청장을 초대 국수본부장으로 깜짝 발표했다.


남 본부장은 수사통으로 알려졌지만 공교롭게 2018년 8월부터 1년간 현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에 파견 근무를 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으로 복귀한 남 본부장은 그해 말 치안감으로 승진해 경남청장으로 영전했다. 문 대통령 최측근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교 후배이기도하다. 남 본부장 발탁에도 전 장관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직제상 행안부 아래에 있는 기관이다. 국수본부장은 형식상 경찰청장이 추천하고 행안부 장관의 제청을 거치지만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이번 인사를 두고 외부 공모는 요식행사에 불과하고 친정부 인사를 낙점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경찰청은 남 본부장이 내정된 직후 언론에 배포한 프로필에서 청와대 근무 경력을 쏙 빼 논란을 더 키웠다.

수사권은 국가 권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로 국민들 삶과 직결된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나 '화성 8차사건' 등에서 보듯 경찰의 강압 수사와 조작 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이 적지 않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등 정치경찰의 면모는 정치검찰 뺨친다. 올들어선 이른바 '정인이 사건'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등으로 경찰에 대한 시선이 더더욱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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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수범 출범을 치켜세우며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대통령 스스로 초대 국수본부장을 경찰 내부서, 그것도 친정부 인사를 임명하면서 13만 경찰조직에 대한 신뢰의 근간인 수사의 공정성을 훼손한 모양새가 됐다. 국수본이 중심이 돼 수사중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건은 경찰 입장에선 명예회복 할 기회이자 위기다. 자칫 삐끗하면 경찰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정권이 손에 쥐여준 경찰 100년의 숙원을 정권에 가장 뼈아픈 자충수로 갚는다면 경찰의 미래는 없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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