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가을귀]인간의 이기심으로 진화 '시저'는 행복했을까
크리스토퍼 라이언 '문명의 역습', 인류 최고 업적의 그림자 조명
문명 이전의 삶은 생존투쟁? 야만인에 대한 오만한 편견
"한 시대를 떠받치는 망상의 효력이 떨어질 때 그 시대는 끝난 것이다."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남긴 말이다. 우리 시대를 떠받치는 망상은 ‘발전’ 혹은 ‘문명화.’ 인류 최고의 업적으로 손꼽히지만 어느덧 수명을 다해간다. 여기저기서 이상 징후가 포착된다. 이산화탄소 증가와 바닥을 드러내는 어획량. 유출된 원유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돌연변이 병원균은 최신 항생제를 무력화한다. 방사능 수증기마저 대기로 배출돼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이 무겁게 짓누른다. 놀라운 발전에도, 아니 어쩌면 그런 발전 때문에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라이언이 쓴 ‘문명의 역습’은 문명이 인류에게 물질적 이득을 제공한 대가로 많은 것을 앗아갔다고 경고한다. 발전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환부를 다양한 사례로 드러내고, 인류가 잃어버린 행복의 원형을 가리킨다. 그것은 발전이 필요없을 만큼 행복하고 편안했을 선조들의 삶이다. 수렵채집인의 사고방식을 가져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선조의 뿌리와 본성을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고, 존중하고, 그들을 본받는 미래에 조금씩 가까워져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낙관주의자라면 코웃음칠 수도 있겠다. 식생활만 해도 현대인이 선사시대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먹는다고 생각할 테니. 그런데 이런 결론은 농업이 시작되기 전 기아가 만연했으리라는 신(新)홉스주의적 전제를 깔고 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쿵족은 하루 평균 2140㎈나 섭취한다. 여기서 단백질은 93g이나 된다. 쿵족은 여든 가지 이상의 식물을 먹는다. 몇 가지 작물에만 의존하다 실패하면 굶주리는 농경사회 주민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수렵채집인들도 식량 부족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이동생활을 하고 먹을 것이 다양해 변화한 환경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현대인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방식이다. 이들이 가끔 굶주리고도 기아선상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은 유골 분석으로도 입증됐다.
현대인들의 사정은 어떨까.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4년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인구는 8억500만명이다. 아홉 명에 한 명 꼴이다. 현대인이 수렵채집인보다 잘 먹고 산다는 주장은 이들을 제외할 때만 맞게 된다.
라이언은 미국의 인류학자 마크 네이선 코언이 고고학 문헌과 복수 관찰 보고서를 토대로 작성한 ‘건강과 문명의 시작’에 주목한다. 이 책의 결론은 문명사회의 환상을 버리고 인류의 실제 역사 기록만 보면 수렵채집인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산다는 주장이다. "전반적으로 인류의 식생활 수준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계속 떨어진다. (…) 수렵채집인들 가운데 영양섭취가 가장 열악한 집단마저도 오늘날의 도시 빈곤층보다 양호하다."
라이언은 짧게 굶주린 기간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부연한다. 오히려 적절한 단식이 건강에 기적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파한다. "사실 수명을 늘리는 방법 가운데 유일하게 증명된 것은 칼로리 제한뿐이다. 70여년 전 생물학자들은 동물들에게 평소 양껏 먹을 양을 주다가 칼로리를 3분의 1 이하로 줄여서 주면 광대파리, 시궁쥐, 생쥐, 개뿐 아니라 영장류도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건강도 눈에 띄게 호전됐다."
칼로리 제한은 암, 당뇨, 퇴행성 신경질환도 예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저명한 병리학자 로이 월포드(1924~2004)는 평소 양의 절반만 먹인 쥐의 수명이 두 배가량 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임상영양학저널’에서도 비슷한 실험결과가 소개된 적이 있다. 무제한으로 먹던 동물에게 먹을 양을 15~40% 줄였더니 인슐린 민감성, 심혈관질환, 스트레스 반응이 눈에 띄게 호전됐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먹고 싶은 양보다 적게 먹으면 여러 이점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에는 평균·최장 수명 증가, 자생·유발 암 발병률 감소, 신경노화 감소, 신장질환 감소, 생식기능 강화 등이 포함된다."
문명 이전의 삶이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라는 인식은 ‘야만인’에 대한 오만한 편견이다. 라이언은 우리 삶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왜곡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어떤 동물인지를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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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한 조너스 소크(1914~1995) 박사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지혜를 개발해 바람직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지혜를 개발하도록 도와주고 싶다면 이제 ‘너 자신을 알라’만으로는 부족하다. ‘너의 종을 알라’가 필요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연의 지혜, 그중에서도 생명의 지혜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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