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중국, 영국 그리고 양귀비
[아시아경제 베이징=조영신 특파원] 붉은 양귀비꽃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사망한 영국군을 추모하는 상징물이다. 영국은 1차 대전 종전일인 1918년 11월 11일을 현충일로 지정, 기념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이날 양귀비꽃 조화나 배지를 가슴에 달거나 무덤에 양귀비꽃을 헌화한다. 양귀비꽃이 전몰자를 추모하는 상징물이 된 것은 1915년부터다. 캐나다 참전 군의관 존 매크레이가 전사한 전우의 무덤 주변에 핀 양귀비꽃을 보면서 '플랑드르 들판에서'라는 시를 남겼다. 이 시가 알려지면서 양귀비꽃은 전사자를 추모하는 상징물이 됐다.
중국에서 양귀비꽃은 치욕의 역사를 상징한다. 양귀비꽃은 마약인 아편의 원료다. 양귀비가 천국의 쾌락과 지옥의 고통을 주는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아편은 청나라 말기 급속도로 퍼졌다. 당시 영국은 청나라와의 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영국은 은(銀)을 지불하고 차(茶)를 수입했다. 영국인들의 엄청난 차 소비로 은이 부족할 정도였다(미국 독립의 단초가 된 보스턴 차 사건도 영국인들의 차 사랑에서 비롯됐다). 차 교역으로 재미를 보지 못한 영국은 식민지인 인도에서 아편을 가져와 청나라에 불법으로 팔았다. 그리고 마약을 판 돈으로 차 값을 지불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교역은 1840년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청나라의 아편 몰수가 빌미가 돼 전쟁이 일어났다. 청나라는 영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포로 무장한 영국 상선은 청나라 정규 함대를 초토화시켰다. 청나라는 1842년 백기를 들고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었다. 1997년 반환된 홍콩 땅이 이때 영국으로 넘어갔다. 청나라는 광저우와 닝보, 상하이 등 5개 항구의 빗장을 풀었고, 전쟁 배상금까지 물었다. 더 많은 아편 이익을 원했던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1856년 2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패배한 청나라는 불평등 조약인 톈진조약과 베이징조약을 체결하는 수모를 겪었다.
중국과 영국의 양귀비꽃에 대한 시각차는 극명하다. 지난 2010년 11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영국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총리를 포함 영국 대표단은 저마다 가슴에 양귀비꽃 모양의 배지를 달고 중국에 들어왔다. 중국 정부는 양귀비꽃이 아편전쟁을 연상시킨다며 영국 대표단에 배지를 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으나 영국 대표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꽃 배지를 가슴에 단 캐머런 총리와 기념 촬영을 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영국은 제국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로 신분 세탁한 국가에 불과하다.
19세기 패권국가 영국과 21세기 잠재적(?) 패권국가인 중국간 방송전쟁이 시작됐다. BBC가 신장 위구르 여성 성폭행 등 수용소 실태 의혹을 보도하자, 중국은 가짜뉴스라며 강력 반발했다. 영국은 중국국제TV의 방송면허를 취소했고, 중국은 BBC 월드 뉴스의 국내 방영을 금지시켰다.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영국 정부가 홍콩 민주주의 문제를 앞장서 제기하는 등 중국의 인권 문제를 연일 지적하고 있다. 영국은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를 동아시아에 파견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참여할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180년 전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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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중 무역분쟁으로 시작된 미ㆍ중갈등이 중국 견제를 넘어 중국대 비중국으로 갈리는 형국이다. 중국도 중대 결심을 해야 할 때다. 서방진영이 지적하는 인권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개선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경제만으로는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 전 세계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인정할 때 진정한 '중화민족'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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