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간 조직적 학대...수용된 유아의 15% 사망
가톨릭근본주의 사회 속 은폐..."타락한 여자" 낙인

1922~1998년까지 아일랜드 미혼모 자녀 9000명이 학대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1922~1998년까지 아일랜드 미혼모 자녀 9000명이 학대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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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아일랜드 정부는 자국 내 가톨릭 교회 미혼모 시설에 대한 실태 조사결과, 1920년대부터 70년 이상 미혼모와 그 자녀들에 대한 조직적 학대가 발생했으며, 이에따라 9000명 이상의 유아가 살해당했다고 발표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향후 생존자들에 대한 보상조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1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아일랜드 조사사법위원회는 이날 1922년부터 1998년까지 77년간 가톨릭 교회 미혼모 시설들에서 발생한 유기와 학대로 인해 9000명 이상의 유아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동안 미혼모 시설 18개에 수용된 유아 5만7000여명의 약 15%가 학대로 사망한 셈이다. 지난 5년에 걸친 조사 끝에 나온 이번 실태보고서는 2865페이지에 달하며, 미혼모 여성과 유아에 대한 폭력과 사망은폐 등 조직적 학대 내용들이 포함돼있다.

미홀 마틴 아일랜드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가 여성과 아이를 나쁜 환경에 놓이게 했다”며 “그들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도록 사회가 강요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마틴 총리는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생존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아일랜드 정부는 미혼모와 자녀가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관련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실태보고서는 지난 2014년 아일랜드 골웨이주 출신의 역사학자인 캐서린 콜리스가 고향인 골웨이주 투암 마을의 봉 세쿠르(Bon Secours) 수녀원이 운영한 미혼모 시설의 역사를 조사하던 중, 796명의 유아를 기록도 없이 매장한 사실을 발견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수녀원은 유아들이 주로 영양실조와 홍역, 결핵과 같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조직적인 학대와 유기, 방치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콜리스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가톨릭교회는 혼외로 자녀를 출산한 여성을 죄악시하는 문화를 낳았다"며 "당시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강요받았지만, 교회나 지역 사제에 저항하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많은 어린이가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사회의 태도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면서 "조금의 위생 조치와 보살핌이 있었다면, 많은 아이가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 시설들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정서적 학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혼모들은 자신의 자녀와 강제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수용됐던 유아들 중 1638명은 미혼모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미국 등 타국으로 입양 보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부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서적 학대로 인한 후유증을 안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다만 성적 학대나 신체적 학대의 증거는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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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아일랜드의 뿌리깊은 가톨릭 근본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매우 독실한 가톨릭 국가로 분류되는 아일랜드에서 미혼모들은 '타락한 여자'로 낙인찍혀왔다. 미혼모 자녀의 경우에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해 교회에서조차 세례는 물론 교회묘지 매장도 거부돼왔다. 위원회는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미혼모의 부모들은 자녀의 출생사실을 숨기기 급급했고 미혼모 수용시설의 실태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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