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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 '패러다임' 바꾼 '슈퍼 을' TSMC [히든業스토리]

최종수정 2020.12.31 22:18 기사입력 2020.12.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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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공업기술연구원장 맡은 모리스 창
56세 나이에 TSMC 창업
종합반도체기업 시대에 '순수 파운드리' 모델 고안
현대 글로벌 반도체 분업 체제 형성 주도

TSMC 로고. / 사진=연합뉴스

TSMC 로고.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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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반도체는 글로벌 분업화가 극히 고도화된 산업으로, 설계에 집중하는 '팹리스'(fabless) 업체와 위탁생산에 특화된 파운드리가 주축을 이룬다. 이 가운데 오늘날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로 손꼽히는 기업 'TSMC'는 대만 반도체의 자존심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도 이른바 '슈퍼 을'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TSMC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인 동시에 세계 최초의 파운드리이기도 하다. TSMC를 설립한 모리스 창 창업주 겸 전 회장이 파운드리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최초로 고안했기 때문이다.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창 전 회장은 어떻게 TSMC를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로 일으켜 세웠을까.

◆미국 반도체 엔지니어에서 대만 연구원장으로


모리스 창 전 회장은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났다. 창 전 회장의 가족은 당시 중국 땅에서 벌어졌던 국공내전·중일전쟁 등을 피해 난징, 광저우 등 중국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결국 미국에 안착했다. 장중마오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인이었던 창 전 회장도 모리스라는 낯선 영어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창 전 회장은 1949년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했고, 1952년부터1953년까지 미 매사추세츠공대에서 기계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의 반도체 대기업이었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창 전 회장은 1978년 그룹 전체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1983년에는 전자기업인 '제너럴 인스트루먼트'로 이직, 연구개발(R&D)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미 미국에서 존경 받는 엔지니어였던 창 전 회장은 1985년, 54세의 나이에 미국을 떠나 대만으로 향했다. 당시 대만 정부는 첨단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직을 맡아줄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고, 창 전 회장에게 이를 제안했다. 창 전 회장은 대만 정부의 요청을 수락, ITRI 원장으로써 대만의 미래 산업을 연구하는 업무를 맡았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겸 전 회장 / 사진=연합뉴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겸 전 회장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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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순수 파운드리' TSMC 창업


창 전 회장은 1987년, 56세의 나이에 TSMC를 창업했다. 대만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첨단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게 창업의 이유다.


창 전 회장은 미국에서 오랜 기간 반도체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했는데, 이 사업 모델을 세계 최초로 적용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TSMC다.


당시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 IBM·TI, 일본 도시바 등의 종합반도체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종합반도체기업이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맡는 기업을 의미한다.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를 다루는 반도체 산업은 설계 생산 모두 매우 까다로운데, 설계의 경우 우수한 엔지니어 인력과 R&D를 필요로 하며, 생산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반도체 제조 설비와 공장을 세우고 관리할 자본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종합반도체기업들은 거대한 규모를 무기 삼아 작은 팹리스 업체들에게 기술 이전을 압박하는가 하면, 경쟁을 방해했다.


이때 창 전 회장은 설계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로지 위탁생산만 한다는 순수 파운드리 개념을 생각해 냈다. 소규모 팹리스 업체들은 TSMC에 반도체 주문 제작을 의뢰해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고, TSMC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하는 본격적인 팹리스 업체들이 탄생했고, TSMC는 이들의 주문 생산을 도맡으며 반도체 업계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될 '슈퍼 을'로 자리매김했다. 설계-생산이라는 글로벌 반도체 분업화를 주도한 기업인 셈이다.


대만 TSMC 웨이퍼 공장 / 사진=연합뉴스

대만 TSMC 웨이퍼 공장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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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세 노쇠한 몸 이끌고 기업 위기서 구해


창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74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TSMC가 위기에 빠지자,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잠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회장직으로 돌아온 뒤 창 전 회장은 우선 해고된 숙련 직원들을 다시 복귀시키고,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다른 경영자들과 달리 반도체 산업에서는 수요가 복구될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창 전 회장의 공격적인 투자 전략은 빠르게 빛을 봤다. TSMC의 2010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95% 늘어난 4195억대만달러(약 16조2640억원)를 기록해 반등에 성공했다.


◆"TSMC 성공 비결, 파트너 덕분"


지난해 TSMC는 1조700억대만달러(약 41조원)의 매출을 올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같은 해 4분기 기준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2.7%로 2위인 삼성전자(17.8%)를 따돌리고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TSMC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창 전 회장은 은퇴를 선언한 뒤 5일이 지난 2017년 10월7일, 일 매체 '니케이아시아리뷰'와 인터뷰에서 "TSMC는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창 전 회장에 따르면, TSMC의 사훈은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를 채택하고 있다. 대신 성공 가능성이 큰 파트너들과 굳건한 신뢰 관계를 맺는 것이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창 전 회장은 "어째서 TSMC가 그동안 성공적이었는가? 항상 적절한 파트너들을 발굴해 왔기 때문"이라며 "그래픽의 시대에는 엔비디아를, 휴대폰의 시대에는 애플, 퀄컴 같은 회사들과 비즈니스를 했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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