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난성 태항산 왕망령의 모습[이미지출처=중국세계지질공원(GG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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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기자] 중국 5대 명산 중 하나인 태항산 꼭대기에는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릴 정도로 천하절경이라 알려진 '왕망령(王莽領)'이란 대협곡이 있다. 왕망이란 이름은 기원전 8년 세워진 중국 신(新)나라의 건국자, 왕망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왕망이 백만대군을 이끌고 후한의 태조 광무제가 이끌던 8000명의 군사와 싸워 대패해 천하를 잃었다는 고사가 전해지는 곳이다.


왕망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전력 차이에도 참패한 이유는 그가 개혁정치를 빙자한 폭정으로 민심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다. 왕망은 당시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부자들의 토지 과다 소유 문제를 일거에 없애겠다며 건물ㆍ임야를 가리지 않고 국가 내 모든 토지를 국유화시키고, 국가가 개인소유로 허용한 규모 이상의 토지는 모두 국가에 반납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왕궁 근처에 1만여채의 임대주택을 짓고, 위조지폐와 부정축재를 막겠다며 화폐개혁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초창기 그가 내세운 개혁안들은 모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제도였고, 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오늘날 현대 중국에서도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개혁가라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를 지지하던 서민들은 눈썹에 빨간 물감을 칠한 반정부군인 적미군으로 돌변한다. 개혁안 자체로는 그럴 듯했지만, 제대로 시행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망은 벼슬아치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며 녹봉을 폐지하는 대신 부자들로부터 반납받은 토지들을 봉사의 대가로 관리들에게 나눠줬다. 화폐개혁은 15년 집권 동안 5차례나 실시해 물가를 폭등시켰고, 가난한 유생들에게 나눠준다는 임대주택은 공신들이 독차지했다.


백성들이 전국에서 반발하고 있었지만 왕망은 전국에서 48만명의 문사들을 동원해 자신의 치적을 칭송하는 시를 짓게 하며 귀를 틀어막았다. 이어 전염병이 돌자 자신의 측근 외에는 왕궁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만들어 민심에 완전히 등을 돌렸고, 자신이 하늘이 내린 군주라며 도참사상 등 사이비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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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한나라의 옛 왕족인 광무제가 백성과 함께 태항산에서 봉기하자 백만대군을 파견했다. 그러나 장수들 중 믿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63명에 이르는 도사와 방술사 등 자신의 사이비종교에 심취한 이들에게 병력을 맡겼다. 이들이 병사들에게 별자리와 음양오행을 들먹이며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짜려 하자 화가 난 병사들이 모두 흩어져버리면서 왕망은 참패하고 만다. 왕망령은 이후 대협곡의 절경과 함께 중국 역대 정치인들이 왕망의 실패를 곱씹기 위해 찾는 명소가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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