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비만을 치료하기 위하여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대신, 지방 음식을 많이 먹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탄수화물의 과다섭취가 비만의 원인이라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요법은 일시적으로 몸무게를 줄이는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지나치게 줄이면 탄수화물의 중요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고지방 섭취가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건강한 식사법은 아니다.
탄수화물은 탄소와 수소, 산소의 화합물로 생명체 안에서 여러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모든 세포를 구성하는 DNA와 RNA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 성분이며, 혈당의 형태로 모든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원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영양소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식이섬유가 분해될 때 만들어지는 여러 물질은 건강증진에 많은 순기능을 수행한다.
주로 에너지원으로 많이 이용되는 탄수화물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당(simple carbohydrates)과 복합당(complex carbohydrates), 식이섬유의 셋으로 나누는 방법이 좋다. 단순당은 포도당이나 설탕처럼 구조가 단순하여 작은창자에서 쉽게 흡수할 수 있는 탄수화물이고, 복합당은 단순당이 길고 복잡한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단순당으로 분해되어야 흡수할 수 있는, 크고 복잡한 분자 형태의 탄수화물을 말한다.
단순당은 짧은 시간에 쉽게 흡수되기 때문에 혈당이 갑자기 올라가고, 혈당 공급시간이 짧아 특히 당뇨병 환자들에게 좋지 않다. 복합당은 쌀이나 밀, 옥수수처럼 곡식에 많이 들어있는 탄수화물로 복합당 상태로는 바로 흡수할 수 없어 소화효소에 의해 단순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되는데, 분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려 천천히 흡수된다. 복합당에서 만들어지는 단순당과 음식에서 섭취한 단순당을 우리 몸이 이용함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복합당이 단순당에 비하여 건강에 좋은 탄수화물이라고 말하는데, 단순당은 다 나쁘고, 복합당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과일이나 채소에 들어있는 단순당은 비타민이나 미네랄, 항산화제, 식이섬유와 같은 중요한 영양소와 함께 들어 있어 건강에 유익하며, 이러한 영양소를 제거하고, 농축된 단순당만 들어있는 쿠키와 케익, 탄산음료와 같은 가공식품이 나쁘다.
단순당 가운데 설탕은 특히 더 나쁘기 때문에 음식에 첨가되어 있는 설탕의 섭취량을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탕 한 분자는 소화효소에 의해 포도당 한 분자와 과당 한 분자로 분해되는데, 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대부분 지방으로 바뀌어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과 같은 각종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고, 암의 진행을 촉진시키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생명이야기 20편 참조).
복합당이 단순당보다 대체로 건강에 좋은 것은 맞지만, 모든 복합당이 다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현미나 통밀처럼 겉껍질만 제거한 통곡식에는 비타민이나 건강 지방, 식이섬유와 같은 중요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지만, 흰쌀이나 흰밀처럼 속껍질이나 씨눈을 제거한 정제된 곡식에 들어있는 복합당은 통곡식에 들어있는 복합당보다 건강에 훨씬 좋지 못하다.
식이섬유는 복합당의 일종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나 동물의 소화효소로는 단순당으로 분해할 수 없어서 에너지원으로는 사용하지 못하지만, 대표적인 좋은 탄수화물이다. 큰창자에 살고 있는 장내세균에 의해 분해되는데, 이 때 만들어지는 이뉼린이나 베타글루칸, 펙틴, 짧은 사슬 지방산(SCFA)과 같은 물질들이 비만과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의 예방과 치유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식이섬유는 위장관을 통과하면서 콜레스테롤과 같은 지질을 흡수하여 저밀도(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낮추어 심장질환의 위험을 줄이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여 식욕을 줄여 비만의 위험도 줄인다(생명이야기 21편 참조).
모든 영양소는 필요한 만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며, 과소섭취하는 것은 물론, 과다섭취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탄수화물도 오랫동안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하면, 비만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때 나쁜 탄수화물, 곧 정제된 단순당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과 정제된 곡식으로 만든 음식의 섭취는 줄이되, 좋은 탄수화물, 즉 통과일이나 채소, 정제하지 않은 통곡식 음식은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미국의 식사 가이드라인(Dietary Guidelines for Ameicans)이 적절한 칼로리 범위 안에서 식사하되, 다양한 채소와 통과일, 통곡식을 충분히 먹고, 설탕은 하루 소요 칼로리의 10% 미만으로 제한하라고 권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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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독립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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