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사적자치를 위협하는 권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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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은 보통 사법(私法)상의 법률 관계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책임하에서 규율되고 국가는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근대 사법의 원칙이다. 사적자치 원칙의 이론적 근거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이다. 인간이 존엄하고 자율적이라는 것은 인간은 다른 생물체와 달리 자율적으로 정한 삶의 목표를 실현해나감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 책임진다는 뜻이다.


사적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활동의 자유와 계약의 자유, 생명·신체의 온전성, 소유권의 보장, 목적으로서 인간이라는 조건이 보장돼야 한다. 사적자치의 보장은 헌법상 기본권 보장을 통해 국가에 의무로 부여돼 있다. 즉 국가는 사적자치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도 사적자치는 시장경제, 시민사회에 대해 국가의 최소한의 개입을 요청한다.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 등의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사적자치의 본질에 대한 침해는 금지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회에서 시민에 대한 국가 권력의 통제와 감시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사적자치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더욱이 5G 통신·클라우드·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개인 데이터에 대한 광범위한 수집·분석을 가능하게 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재정확대 등을 통한 큰 정부도 사적자치를 위협한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연구개발(R&D)사업은 정부 용역에 의존하는 한계기업의 생존을 보장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민간이 담당해야 할 통신 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제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적자치를 위협하는 다른 권력은 기업이다. 이제 거대 기업은 국가에 버금가는 자본·예산·인력을 보유하고 시민사회에서 주도적 권력이 됐다. 특히 플랫폼기업의 권력은 이제 우리의 일상을 거의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는 플랫폼기업이 이용자를 플랫폼에 오랜 시간 잡아두기 위해 추천 기능, 좋아요 기능을 이용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면서 이용자를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온라인상의 활동 내역을 분석해 이용자의 성향에 맞춘 광고를 노출해 상품 구매를 유도한다고 한다. 이제 플랫폼기업은 권력자가 돼 자신과 광고주를 위해 이용자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런 과정을 지배·통제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AI는 사적자치를 위협하는 제3의 권력이 될 수 있다. AI는 이용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다른 가짜 뉴스를 추천한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의 관심사일 뿐 노출되는 정보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용자에게도 정보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AI가 제공하는 사실만 진실로 믿으면서 인간의 행동을 조정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믿고 싶은 정보만 믿고 상대를 배척하는 좌우의 극심한 대립으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 플랫폼 권력, AI 권력이 국민의 지지·관심을 끌거나 원하는 대로 국민을 유도·조정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제 국민이 3대 권력을 법과 윤리로 견제하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플랫폼과 AI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자동차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안전한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상상하기 어렵듯, 아무리 유용하고 필요한 조직과 기술이라도 적절한 위험 방지 수단이 강구되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과 자율적인 삶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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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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