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화성돈이란 자는 매우 비범한 인물로, 만리나 되는 미국 천하를 얻고도 왕좌에 오르지 않고 자리를 자손에게 물려주지도 않았으니 동서고금에 이와 같이 선량한 자가 없었다."
19세기 중국 청나라 말기의 학자이자 관료이던 서계여란 인물이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으로 전권을 손에 쥐었던 그가 권력의 유혹에 지지 않고 세 번째 연임 제안을 뿌리친 채 낙향한 일에 대해, 서계여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워싱턴은 사실 종신독재, 혹은 자신만의 왕조를 개창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인물이었다.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을 이끈 사령관으로 누구보다 공훈이 높고 병권을 쥐고 있었으며, 병사들도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싶어 했다. 또한 유럽이 프랑스 대혁명의 대혼란에 빠져있었고, 영국과의 적대관계도 계속되던 시기라 군사독재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도 매우 높았다.
그러나 워싱턴은 스스로 권좌를 내려놓는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는 1797년 퇴임하면서 밝힌 고별사를 통해 "나는 나의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고 있다. 나라를 위해 살아온 45년 동안 나의 무능함으로 생겨난 흠집들이 망각 속에 사라지길 바란다"는 겸손한 말을 남겼다. 권좌는 버렸지만 워싱턴의 이름은 사후 200여년이 지난 현재도 미국 국회의사당 천장에 미국 독립 13개주를 뜻하는 13명의 천사와 함께 남아,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존경받게 됐다.
그가 고별사를 마치고 퇴임한 이듬해는 공교롭게 대서양 건너편의 또 다른 전쟁 영웅인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도중 돌아와 프랑스의 권좌를 잡은 해였다. 워싱턴과 전혀 다른 독재의 길을 택했던 나폴레옹은 1801년, 스스로 황제가 되면서 15년간 유럽 천하를 지배했지만, 대서양 망망대해인 세인트 헬레나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나폴레옹은 죽기 전 "내 이름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지지만, 워싱턴은 위대한 제국의 시조로 남을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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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의 모든 대통령은 워싱턴이 보여준 모범적 결단에 따라 법으로 대통령 임기를 2선으로 제한하기 전부터 스스로 물러서는 전통을 만들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민주당이 대선 불복을 선언하면서 플로리다에서의 재검표를 밀어붙일 때도 "미국에는 분열보다 화합이 절실하다"며 스스로 대선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미국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존경을 받았다. 중국 청나라 황제의 신하조차 탄복했던 이 전통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지켜지기를 세계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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